시골살이 현실 9편: 멘탈이 무너졌던 날들, 그리고 다시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시골로 이사한 지 2년이 넘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고 한적한 시골살이지만,
그 안에는 말 못 할 무너짐이 참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 살면 멘탈이 단단해질 거라고 말한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그 단단함은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멘탈이 완전히 무너졌다가,
그걸 하나하나 다시 세우는 과정 속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시골에 와서 적어도 4번 이상 ‘이 생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새벽 4시에 수도관이 얼어 손에 동상을 입고,
한겨울 장작이 떨어져 벌벌 떨며 밤을 새우고,
이웃과의 갈등으로 마을 모임에서 소외되고,
택배가 안 와서 3일간 물도 못 끓여 먹던 순간까지.
그 순간순간은 ‘조용한 전쟁’이었다.
내 멘탈과의 싸움이었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간들이었다.
이 글은 그 무너졌던 시간들을 솔직하게 기록한 이야기다.
시골살이를 하고 싶지만 멘탈이 약할까봐 걱정하는 사람,
지금 시골에 살고 있지만 매일 흔들리는 누군가에게
내 경험이 작게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겨울 첫 해, 멘탈이 처음 무너진 날
귀촌 첫 겨울은 상상 이상이었다.
기름보일러가 고장이 나고, 장작은 다 떨어졌다.
그날 밤, 마을에 눈이 20cm 넘게 쌓였다.
보일러도, 전기장판도 꺼진 방 안에서
두꺼운 이불 속에서 아내와 벌벌 떨고 있었다.
밖은 영하 15도였고,
수도관은 얼었고,
핸드폰 신호는 먹통이었다.
문을 열면 온통 하얀 정적.
이사 올 때 상상했던 ‘겨울 감성’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 밤 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이러고 있지?”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곳,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도 올 수 없는 거리,
그게 처음으로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다쳤던 날
시골은 관계가 깊고, 동시에 예민하다.
나는 처음 몇 달 동안 ‘도시 사람’처럼 행동했다.
인사는 가볍게, 마을 모임은 상황 봐가며 참석,
행사에도 내 방식대로 행동했다.
하지만 어느 날,
“○○씨는 좀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마을 전체에 퍼졌다.
그 후부터 마주치면 어색한 침묵이 생겼고,
마을 행사 때도 나만 소외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때 처음으로 ‘관계에 배신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누구도 나를 직접적으로 미워하지 않았지만,
말없는 거리감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마을회관 앞 벤치에 앉아 있던 날,
아내가 말없이 내 손을 잡았고
나는 속으로 “내가 여기 살 자격이 있을까?”를 되뇌었다.
아무도 없고, 아무 일도 없는 날의 무너짐
시골은 고요하다.
처음에는 그 고요함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요는 공허로 바뀌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소음이 싫었지만,
여기서는 아무 소리도 없는 게 더 괴로웠다.
특히 겨울철, 마을 전체가 정적일 때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지낼 때
정신이 서서히 무너졌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게 맞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건 흔히 말하는 ‘귀촌 우울감’이었다.
도시에선 이런 감정을 잊고 살았지만
시골에서는 그 감정과 1:1로 마주해야 한다.
수입이 끊기고, 통장 잔고가 바닥났을 때
귀촌 초기엔 ‘적게 벌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출은 생각보다 많았고,
수익은 생각보다 천천히 들어왔다.
6개월쯤 지났을 때,
잔고는 7만 원이었다.
그 달 전기료가 9만 원이 나왔다.
통장이 마이너스로 바뀌었다.
마을에서 잡일이라도 하려 했지만
겨울이라 일도 없었다.
나는 그때
“내가 선택한 삶이 가족을 고통스럽게 하는 건 아닐까”라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내는 겉으론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이건 자립이 아니라,
무모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멘탈을 지탱해준 3가지 ‘돌파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이곳에 있다.
무너졌던 순간을 지나 다시 일어난 이유는
다음 세 가지 덕분이었다.
첫째, 글쓰기
나는 매일 20분씩 일기를 썼다.
‘오늘 힘들었던 일’,
‘오늘 좋았던 순간’,
‘내일은 이랬으면 좋겠다.’
이 세 가지 주제를 적기 시작했다.
이 간단한 기록이
내 멘탈의 뿌리처럼 나를 잡아줬다.
글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둘째, 자연과의 호흡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숲은 내 기분을 알아챘다.
답답할 땐 뒷산에 올라가
그냥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바람 소리, 나뭇잎, 땅의 촉감.
그것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넌 여기 있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자연은 늘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셋째, 반복되는 하루의 리듬
힘들 때일수록
‘루틴’은 나를 지켜주는 기둥이 되었다.
아침엔 닭장 정리, 낮엔 텃밭, 저녁엔 블로그 글쓰기.
그 일정들이 있었기에
나는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루틴은 사소하지만
정신이 무너졌을 때 나를 붙잡아주는 작은 구조물이었다.
시골살이는 ‘살아있는 멘탈’을 요구한다
시골살이는 예쁘고 조용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정신은 늘 요동친다.
생각보다 외롭고, 예상보다 불편하며,
도움받을 데 없는 곳에서
내 정신 하나로 하루를 버텨야 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시골살이는 ‘멘탈이 단단한 사람’이 잘 버티는 게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회복할 줄 아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나는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
지금도 외롭고, 지금도 불안하다.
하지만 매일매일 다시 서는 법을 배우고 있다.
혹시 지금 귀촌을 고민하면서
‘내가 멘탈이 약해서 걱정된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괜찮다.
무너졌다고 끝이 아니다.
그게 시골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