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현실 11편 – ‘이웃과 거리 두기’는 가능한가? 시골 공동체의 현실
귀촌을 결심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단어는 ‘조용함’이었다. 사람에 치이지 않고, 누군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나만의 공간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갔고, 사람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얇고 건조했다. 그런 점에서 시골은 훨씬 따뜻하고 인간적인 삶을 제공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해본 시골의 인간관계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곳에서는 ‘거리 두기’라는 개념이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물리적으로는 멀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지나치게 가까웠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 왜 이 마을에 왔는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했고, 매주 새로운 관찰과 평가가 따라다녔다.
‘이웃과 거리 두기’는 과연 가능한 일일까? 지금부터 내가 실제로 겪은 시골 공동체의 현실에 대해 자세히 풀어보려 한다.
나를 파악하려는 눈빛들, 시작부터 검증이 필요한 사회
시골 마을은 생각보다 작다. 인구가 200명도 되지 않는 마을에서 새로운 사람의 등장은 곧 ‘이벤트’가 된다. 내가 처음 이사 오던 날, 짐이 내려지는 순간부터 몇몇 어르신들이 골목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왔고, 그 자체로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어디서 왔어요?”, “자식은 있어요?”, “무슨 일 하세요?”, “이 집은 샀어요, 전셋집이에요?”
이런 질문은 인사도 없이 자연스럽게 쏟아졌다. 처음에는 친근함이라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파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골 마을은 낯선 사람을 무조건 환영하지 않는다. 그들은 먼저 ‘안전한 사람인지’ 판단한다. 내 직업, 말투, 복장, 인사하는 방식, 마을 모임 참석 여부까지 모든 것이 검증 대상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내가 ‘혼자 사는 남자’라는 점은 더욱 이목을 끌었다. 외부에서 혼자 들어온 사람은 어쩌면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마을에서는 오랜 시간 가족 단위 중심의 정착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외지인이 혼자 살아가려면, 스스로를 꾸준히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어떤 날은 모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반찬을 몇 통이나 받아왔고, 다른 날에는 인사를 못했다는 이유로 대뜸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 모든 상황이 정해진 룰이 없는 듯하면서도 명확한 질서 안에서 벌어졌다.
사생활의 경계라는게 없는 생활
시골에서는 ‘개인’이라는 개념이 애초에 약하게 형성되어 있다. 공동체 중심의 문화가 뿌리 깊기 때문에, 개인의 선택이나 결정은 마을 전체에 영향을 준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나는 한 달 정도 외출이 많았던 적이 있었다. 그 시기 동안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고, 어느 날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다.
“요즘 왜 집에 잘 안 있어요? 어디 가요?”
나는 단지 개인적인 이유로 외출이 잦았던 것뿐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그조차 설명이 필요했다. 마당에 빨래를 널어두지 않으면 ‘아프다’, 마당에 불이 늦게까지 켜져 있으면 ‘무슨 일이 있다’, 문이 닫힌 채 조용하면 ‘싸움이 났다’는 식으로 모든 상황이 해석된다.
심지어 택배 상자도 이야기의 도구가 된다. 누가, 언제, 어떤 박스를 받았는지가 관찰된다. 마을에서는 배송기사의 출입도 뉴스거리다. 어떤 집은 매주 택배를 받고, 어떤 집은 손님이 자주 온다. 그런 정보는 빠르게 퍼진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마당과 창문을 조심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누구에게 보이느냐, 어떻게 보이느냐가 시골에서는 하나의 인간관계 전략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이런 상황이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관심’과 ‘연결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었다. 공동체가 살아있다는 것은 곧 누군가가 나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골살이에서 사생활을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단, 그것을 피하려 하기보다는 선을 잘 지키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거리 두기를 시도해본 경험, 그리고 마주한 벽
나는 어느 시점에서 ‘거리 두기’라는 개념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사람들과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마을 행사에는 최소한만 참여하고, 개인적인 일은 공유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처음 한두 달은 비교적 조용했다. “요즘 안 보인다” 정도의 말이 오갈 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마을 회관 청소에 빠졌을 때, 몇몇 어르신이 내게 직접 말을 걸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 사이에선 내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그 양반, 요즘 너무 혼자 살려고 해.”
그 한마디가 나를 다시 모임에 불러냈다. 나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 공동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곳은 개개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관계의 연결’로 유지되는 구조였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내가 일정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전체의 균형이 흔들리는 구조였다.
거리 두기를 하려면, 오히려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나의 이유, 상황, 감정 등을 반복해서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기 때문이다. 마을은 규칙이 없는 듯하면서도, 나름의 ‘사회적 질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말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축적된 관습이다. 그 관습을 무시하거나 무지한 채 살아가면, 곧 소외라는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결국 나는 거리 두기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방향을 바꿨다. 완벽한 독립 대신, ‘선택적 연결’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중요한 행사에는 얼굴을 비추되, 사적인 이야기는 최소한으로 유지했다.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친근하지만 경계를 두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사람들도 나의 스타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거리 두기’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조율하느냐의 문제였다.
시골 공동체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
시골살이에서 가장 어려운 건 집도, 일도, 자연도 아니다. 가장 큰 난관은 사람과의 거리라고 할 수 있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면 외로워진다. 도시에서는 그 중간 지점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모든 관계가 깊고 길게 이어진다. 단절은 곧 단절된 채로 고착되고, 연결은 곧 깊은 참여로 이어진다. 그 가운데서 나만의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느낀 최선의 방식은 ‘조용하지만 흔적 있는 삶’이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내가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신호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마당을 늘 정리해놓고, 마을 모임에는 이유가 있을 때만 빠지며, 인사는 짧게라도 꼭 나누는 방식.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도 점차 그 리듬을 인정해준다. 시골의 인간관계는 빠르게 만들 수 없고, 쉽게 단절할 수도 없다. 대신 천천히,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