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21편 : 도시에서 배운 삶의 방식이 시골에선 통하지 않았다

eoil0023 2025. 7. 4. 18:45

같은 말을 해도, 시골에선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귀촌 초기에 나는 착각했다.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이 사는 건 다 똑같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었다.

나는 처음에는 도시에서 살아온 방식 그대로 시골에서도 소통하고 생활했다.

 

예의 바르고 간결한 인사

사생활 존중

불필요한 대화는 피하는 간명한 소통

효율적인 시간 배분

일 처리 중심의 행동 방식

 

이런 삶의 리듬은 도시에서는 매우 ‘바람직한 성향’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골에선 그 태도 자체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 마을 회관에서 청소를 마친 후
"수고 많으셨어요. 다음에 또 도울게요."라고 말하고 먼저 나왔다.
그때 어르신 한 분이 조용히 말했다.

 

“우린 일 끝나고 가만히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수다 떨다 가는 게 정이야.

혼자 일만 하고 가버리면… 그게 섭섭한 법이지.”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도시에서 배운 ‘시간 낭비하지 않는 방식’이

시골에선 ‘무정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시골살이 현실 : 도시에서 배운 삶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익힌 ① 말투와 태도 – 시골에선 오만하게 들린다 

도시에서 말은 짧고 핵심적일수록 ‘스마트’하다고 느껴진다.
반면 시골에서는 그 말투가 무뚝뚝하거나 차갑게 들릴 수 있다.

도시식 말투가 만들어낸 오해

도시: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골에선 이렇게 들린다:
“대충 넘기려나 보다.”

 

도시:

"바쁘셔서 힘드실 텐데요."

시골 해석:
“그럼 나는 시간 남아서 하는 줄 아나?”

 

도시에서는 효율성과 배려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시골에서는 말의 ‘뉘앙스’보다 ‘사람의 마음’을 본다.

나는 어느 날 마을 어르신께
“불편하실까 봐 일부러 멀찌감치 있었어요.”라고 말한 적 있다.
그런데 이후 그분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중에 다른 이웃을 통해 들은 말은 이랬다.

 

“그 사람, 자기 혼자 다르다고 선 그어놓더라.”

 

내 진심은 배려였지만,
도시식 말투는 시골 공동체에서 철저히 ‘다름’으로 받아들여졌다.

 도시식 거절은 시골에선 관계 단절로 느껴진다

도시에서는 "다음에 뵐게요", "다음에 뵙죠" 같은 말이
사양 또는 일정 조정의 말로 통한다.

하지만 시골에선

 

“왜 오늘은 안 오는 거지?”

“그 집 요즘 왜 저래?”
라는 궁금증과 감정이 따라붙는다.

 

나는 한 번 회관 청소를 빠졌고,
그 뒤로 3개월 동안 회관 모임 초대 연락을 받지 못했다.

시골에서 거절은
한 번이 아니라 ‘연속된 관계의 끊김’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도시의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시골은 말을 거절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관계를 정리하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도시에서 익힌 ② 시간관리 습관 – 시골에선 ‘차가운 사람’이 된다 

도시에서 나는 시간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약속은 정확히 지켰고, 일정을 겹치지 않게 조율했으며,
불필요한 대화나 잡담은 줄이고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떠나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그런 시간관리 능력이
‘냉정하고 이기적인 태도’로 오해받을 수 있다.

 1. 시골은 ‘느림’이 기본값이다

회관 모임은 시작 시간이 없고,

점심 식사는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시작되며,

농사일도 해 뜨면 시작하고, 해 지면 끝난다.

 

“몇 시에 시작하나요?”라는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이상한 눈초리를 받았다.
그들에겐 시간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흐름’이 기준이었다.

 2. ‘빨리 끝내자’는 태도는 거부당한다

도시에서는 "효율적으로 하죠"가 당연한 제안이다.
시골에서는

 

“빨리 하자고? 그럼 그 뒤엔 뭐하려고?”라는 반응이 온다.

 

시골에서 중요한 건
일을 ‘같이 하는 과정’이다.
일을 빨리 끝낸다고 해도
함께 차 한 잔 마시고,
같이 말하고,
마당에 앉아 바람을 느끼는
‘공동의 시간’을 공유해야
그게 진짜 마무리다.

나는 이걸 모르고
청소만 하고 조용히 빠졌다가
“그 집은 딴 데 갈 데가 많나 봐”
라는 말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

시간을 지키는 건 도시의 덕목이지만,
시골에선 시간을 나누는 게 더 중요한 가치였다.

도시에서 익힌 ③ 인간관계 방식 – 시골에선 ‘벽을 치는 사람’으로 보인다 

도시에서는 사생활을 중시한다.
이웃과 너무 친해지지 않고,
필요한 때만 소통하고,
각자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편안한 관계’로 여겨진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이런 관계가 불신의 씨앗이 된다.

 1. 말이 없으면 ‘무서운 사람’이 된기 쉽다. 

도시에서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 조용한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시골에서는

 

“왜 말을 안 하지?”

“뭔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라는 불편한 평가로 이어진다.

 

나는 초기에 마을 모임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뭘 숨기는 사람 같다.”

“도와줘도 고맙다는 말이 없다.”
는 말이 오갔다.

 

말을 안 하는 건
시골에선 ‘배타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2.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관계는 통하지 않는다

도시에서는 평소 연락을 안 하다가
필요할 때 연락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시골에선

 

“그 집은 일이 있을 때만 찾아오네.”

라는 평가로 직결된다.

 

시골에서는
자주 마주치고,
별 일 없어도 인사하고,
가끔 쑥이나 고구마라도 나누는
그런 잔잔한 교류가
관계의 기본값이다.

그런 관계 없이 갑자기 찾아가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그 사람은 우리 마을 사람 아닌 거지.”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나는 ‘적당한 거리’가 예의라고 믿었지만,
시골에서는 그게 벽으로 느껴졌다.

시골에서 통하는 삶의 방식은 따로 있다 – 내가 바꾼 7가지 

귀촌 3년차인 지금,
나는 도시에서 배운 거의 모든 삶의 방식을
다시 배우고, 다시 설계했다.

그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말은 짧게, 인사는 자주

 “고맙습니다.”보다 “수고하셨어요.”가 더 자연스럽다.

매번 말을 걸기보다, 짧은 인사라도 끊기지 않게 한다.

 

 ② 설명은 필수다

회관 모임에 못 가면 반드시 사유를 말로 남긴다.

일을 빠질 땐 그냥 사라지지 않고,
“내일 집에 손님이 와서요.”처럼 설명을 덧붙인다.

 

 ③ 일보다 ‘함께’가 우선이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누구 옆에 앉아 있는지가 중요하다.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이 ‘관계의 핵심 시간’이다.

 

 ④ 일정은 계획보다 흐름

“몇 시에 해요?” 대신 “언제쯤 모일까요?”라고 묻는다.

시간보다 동행의 템포에 맞추는 게 존중이다.

 

 ⑤ 거리 두기는 시간으로 한다

피곤할 땐 사람을 피하지 말고,
“오늘은 조금 쉬고 있을게요.”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말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⑥ 고맙다는 말보다 ‘작은 나눔’이 더 오래간다

감사를 전할 때 말보다는
작은 나물 한 줌, 계란 한 판, 고구마 몇 개가
더 진심으로 통한다.

 

⑦ 도시의 효율을 버리고, ‘정’을 이해하려 한다

불편함을 견디고,

어색함을 감내하고,

서투른 관계 속에서 정을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