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22편 : 마을회관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eoil0023 2025. 7. 5. 05:54

처음 귀촌했을 때 나는 마을회관이라는 곳은 단어조차 낯설었다. 도시에서는 그런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려면 카페나 식당에서 약속을 잡아야 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웃과 마주칠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시골은 달랐다. 마을회관이라는 공간이 실질적으로 이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단지 건물 하나일 뿐인데 마을의 기운은 그곳에서 흘러나왔고 사람들의 관계는 그 안에서 엮여갔다.

시골살이 마을 회관에서 벌어지는 일

 

첫 마을회관 방문은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시골에 와서 마을 방송이 처음 울렸을 때 나는 그저 스피커를 통해 흐르는 소음처럼 느꼈다. 하지만 옆집 어르신이 지나가며 “회관 가야지”라고 말했을 때 나는 비로소 그 장소가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보지 않으면 무례하게 여겨질까 걱정되어 참석한 그날, 나는 조용히 구석에 앉아 눈치만 살폈다. 서로를 잘 아는 어르신들 사이에 낯선 얼굴 하나로 앉아 있는 일은 꽤 긴장되는 일이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마을회관이라는 공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회의보다 더 중요한 건 말 없는 관계 형성

시골 마을회의는 도시에서 경험한 회의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안건 중심의 효율적 회의가 아닌, 생활 전반에 걸친 이야기와 소소한 감정 교류가 오가는 자리였다. 누군가는 논두렁이 무너졌다고 걱정했고, 누군가는 비료 값이 오른 이야기를 했다. 거기엔 결과를 도출하는 회의의 목적보다도 ‘같이 들으면서 반응해 주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해 보였다. 나는 말 없이 듣기만 했지만 어느 순간 그 공간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으로 바뀌는 회관의 역할

마을회관은 계절에 따라 그 기능이 달라졌다. 봄에는 농사 준비를 위한 회의가 잦았고 여름에는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쉼터가 되었다. 가을에는 수확을 축하하며 음식을 나눴고 겨울에는 연탄 나눔과 김장 일정이 논의되었다. 회관은 단순한 실내 공간이 아니라 계절을 이겨내고 사람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담긴 장소였다. 나는 계절이 바뀔수록 회관의 존재가 좀 더 익숙해 졌다.

마을회관에서 생긴 첫 번째 인간관계

마을회관을 몇 번 오가다 보니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 이름을 외워주는 이장님, 김치를 싸주신 어르신, 함께 막걸리를 마시자고 불러주는 동네 사람들. 나는 도시에서 몇 년을 살아도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밥 한 끼 하자’는 말을 먼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회관이라는 공간 덕분에 아무런 이익도 계산도 없이 누군가와 친해질 수 있는 경험이 가능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변화였고 가장 고마운 첫번째 기억이었다.

갈등도 있고 오해도 생기지만 결국 풀리는 곳

마을회관에서는 때때로 갈등도 벌어진다. 잡초 제거 일정을 놓고 의견이 충돌했던 날, 고성이 오가며 불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날도 결국 누군가의 농담 한마디와 막걸리 한잔에 분위기는 다시 누그러졌다. 갈등이 숨겨지기보다는 드러나고, 그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과정이 있다. 회관은 그래서 관계가 ‘끊기는 곳’이 아니라 ‘회복되는 곳’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이 도시와의 가장 큰 차이라는 것을 느꼈다. 

회관은 정보의 중심지이자 마을의 뉴스채널

마을회관에서는 마을에 관한 온갖 정보가 빠르게 공유된다. 언제 비가 오는지, 누가 어디 아픈지, 마을버스 시간이 어떻게 바뀌는지, 농기계는 누구네가 빌려갔는지 등 마을의 중요한 정보는 대부분 이곳을 통해 퍼져 나간다. 인터넷보다 빠르고 더 정확하며 무엇보다 감정이 담겨 있어 더 생생하다. 귀촌 초기에는 이런 정보의 흐름에 참여하지 못해 여러 번 낭패를 본 적이 있다. 회관을 오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마을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나 실수도 줄어들었다.

침묵의 참여도 존중되는 이 공간의 배려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처음 회관에 갔을 때는 말이 없는 내 모습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묵묵히 앉아 있는 것도 하나의 참여 방식이었고,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인정받는 분위기가 있었다. 도시에서는 존재를 증명하려면 말을 하거나 성과를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시골의 회관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이미 의미가 되었다. 그 점에서 나는 큰 위안을 얻었다.

어느 날은 잔치가 되고 어느 날은 회복이 되는 공간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어느 마을 어르신의 생신날이었다. 평소처럼 회의가 열릴 줄 알았던 그날은 갑자기 잔치 분위기로 바뀌었다. 떡과 막걸리, 수박과 반찬이 돌고 웃음소리가 회관을 가득 채웠다. 어떤 어르신은 손수 뜬 목도리를 건네주었고 누군가는 직접 만든 나물을 싸주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이 공간이 단순히 일정 조율이나 행정적인 역할만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이 숨 쉬는 곳’이라는 걸 느꼈다.

회관에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을 때

시골살이는 외로움과 오해가 많다. 하지만 회관에서 나는 나를 소개하지 않아도 나를 대신 설명해주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양반은 조용한데 참 성실해”, “농사는 처음이래도 사람은 참 괜찮아”라는 말이 회관 어르신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도시에서는 이런 평판이 형성되기 어려웠지만 시골에서는 회관이라는 커뮤니티 속에서 내 이름과 인상이 조금씩 퍼져 나갔다. 그것은 나에게 단순한 인정이 아니라 ‘이 마을에 속했다’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회관 문을 열 때마다 느끼는 감정

회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아직도 약간의 설렘과 조심스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그것은 도시에서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다. 익숙하지만 여전히 낯설고, 편안하지만 어느 정도 긴장이 동반되는 그 기분은 시골살이만의 독특한 정서다. 나는 그 감정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감정이 주는 울림이 삶의 온도를 높여준다고 믿게 되었다. 회관은 그런 공간이다. 단지 앉아 있고, 듣고, 조금 웃고, 때로는 같이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인간다움을 회복하게 되는 곳이다.

마을회관이 있었기에 내가 시골살이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마을회관이라는 공간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이 마을에서 ‘외부인’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단지 집을 샀다고 해서 그곳에 속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회관에 가서 인사를 나누고 이름을 외우고 얼굴을 익혀야 비로소 그 마을에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나는 회관에서 처음으로 내 이름이 불리는 경험을 했고 그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생긴 순간 이곳이 내 삶의 장소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마을회관은 그래서 귀촌의 적응기에서 빠질 수 없는 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