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현실 27편 : 귀촌 2년차,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귀촌을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처음 시골에 내려왔을 땐 시골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들판에 핀 민들레가 반가웠고, 탁 트인 하늘이 멈춰버린 시간처럼 느껴졌으며, 마당에서 피어나는 이름 모를 풀들을 바라보며 ‘아, 진짜 다른 세계에 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감각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익숙해진다는 건 언제나 그렇게 빠르게 찾아왔고, 그다음엔 불편함이 고개를 들었고, 외로움이 따라왔고, 어색한 인간관계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묻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3년차.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지금 이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같 지만 실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에서의 나와 시골에서의 나는 다르다
도시에 살 땐 나도 모르게 빠르고 바쁘게 살았다. 무언가를 빨리 해내야 하고, 인정받아야 했고,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고, 점심시간에도 업무 전화를 받았으며, 퇴근 후에도 이메일 알림을 끄지 못했다. 그런데 시골에 오고 나서 그런 속도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처음엔 그게 낯설었다.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졌고, 움직이지 않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었으며,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면 그 하루가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뭔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되었고, 텃밭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효율’이 삶의 기준이었지만, 지금은 ‘충분함’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꼭 뭘 해내지 않아도 괜찮고, 지금의 속도로 살아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관계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도시에서는 사람을 쉽게 만나고 쉽게 잊는 상화이 이어졌다. 필요에 따라 만나는 관계가 많았고, 일이 끝나면 연락도 끊겼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시골에선 그게 통하지 않았다. 이웃과는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으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어색해도 인사를 먼저 하게 되었고, 이해되지 않아도 이야기를 끝까지 듣게 되었고,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처음엔 버거웠던 이웃 어르신들의 관심도, 지금은 정으로 다가온다. 도시에서라면 불편했을 대화가 이젠 위로가 되는 순간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모르게 ‘혼자보다는 같이’라는 감각이 조금씩 몸에 배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받아들이는 힘이 생겼다
귀촌을 한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불안감이 엄습한다. 수입은 일정하지 않고, 사회적 소속감도 약해졌고, 언제까지 이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뒤따랐다. 그러나 달라진 건 그 불안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도시에선 불안을 억누르고 애써 감추려 했지만, 지금은 그냥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흔들리고, 매일 똑같은 감정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나 자신을 자책했을 날도, 지금은 그저 ‘그럴 수 있지’라고 넘기게 되었고, 그러다 보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불안은 사라진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달라졌다
도시에서 살 때는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너무 신경 쓰였다. 친구의 SNS, 주변 사람들의 연봉, 누군가의 집 크기, 자동차, 여행 사진, 그런 것들이 나를 자꾸 비교하게 만들었고, 뒤처지는 기분이 들면 불안해졌다. 지금은 그런 비교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물론 여전히 세상 돌아가는 게 궁금하고,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지금은 ‘나한테 맞는 삶’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이 집이 작아도 따뜻하고, 수입이 적어도 시간이 있고, 불안해도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생각이 드니 만족감이 따라온다. 하루하루의 흐름에 집중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마당에 핀 꽃 한 송이에 감탄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이 나한테 더 어울린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바쁘게 사는 것보다 천천히 살아도 중심이 있다면 괜찮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귀촌 2년, 나는 더 단순해졌고 더 풍요로워졌다
처음엔 너무 많은 걸 바꿔야 했다. 생활 방식, 인간관계, 시간 쓰는 법, 말투까지도 바꿔야 했고,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고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조금씩 익숙해졌고, 그 익숙함은 예전의 습관을 대신할 만큼 단단해졌다. 요즘 나는 도시의 카페보다 내 마당의 그늘을 더 좋아하고, 에어컨보다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예전엔 하루가 쉴 틈 없이 흘러갔다면, 지금은 하루 안에 여백이 있고, 그 여백이 내게 생각할 시간과 감정을 돌볼 공간을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 그리고 내 삶을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이 더 분명해졌다. 복잡했던 마음은 단순해졌고, 단순한 일상 속에서 더 많은 풍요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이 질문은 여전히 어렵고 내 머릴 속을 멤도는 문제이다. 귀촌 3년차인 지금도 나는 완전히 시골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여전히 도시의 속도에 미련이 남아 있고, 때때로 서울을 검색하며 과거의 익숙함을 떠올리고,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나는 예전보다 더 단단해졌고, 덜 흔들리며, 더 솔직한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지금의 삶을 선택한 사람으로서 하루하루를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시골살이는 나를 바꿨다.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변화가 없을지 몰라도, 내 안에서는 아주 많은 것들이 움직였고, 그 변화는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조금씩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