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29편 : 시골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eoil0023 2025. 7. 7. 12:53

귀촌한 지 2년이 지났다. 시골살이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계절마다 반복되는 일상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아침에 허리를 펴는 게 예전보다 느리고 무거운 걸 들었을 때 팔에 오는 통증이 하루 이상 간다. 마을 어르신 중 몇 분은 병원에 다녀오셨고, 한 분은 아예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내가 여기에 오래 살아도 괜찮을까, 나이 들어서도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그저 시골의 고요함이 좋았고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지금의 삶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몸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하고, 마을 이웃 중 몇 분이 건강 문제로 고립되는 걸 보면서 이곳이 과연 나의 노년을 보내기에 안전한 장소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시골살이 현실 : 시골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시골살이와 노년의 삶이 충돌하는 지점

시골은 조용하고 단순하며, 일상적인 스트레스가 적다는 점에서 노후에 어울리는 장소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곳에서 살아보면 노년기에 필요한 필수 조건과 시골의 구조가 맞지 않는다는 걸 자주 실감하게 된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병원 접근성이다. 병원 하나 가기 위해선 차를 몰고 최소 30분 이상은 이동해야 하고, 진료 시간은 제한적이며, 응급 상황엔 사실상 대응이 어렵다. 가까운 이웃이 있다고 해도 모두 각자 삶을 꾸리느라 여유가 없고, 도시처럼 방문 진료나 긴급 케어 서비스가 일상화된 것도 아니다. 마을에 요양 시설이 없는 곳도 많고, 보건소마저 일주일에 하루 진료하는 경우도 흔하다. 젊었을 땐 이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지만, 몸이 약해지고 반복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시점이 되면, 이 시스템은 견고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혼자서도 가능한 삶일까, 고립에 대한 공포

노년의 삶은 독립적이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거나, 외부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혼자 산다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위험이 된다. 시골은 혼자 살아도 간섭받지 않고, 주변에서 무슨 일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 환경이다. 젊었을 땐 이게 장점처럼 느껴졌지만, 나이가 들면 이런 무관심이 고립으로 다가온다. 도시의 아파트에선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옆집이 문을 두드려줄 수도 있지만, 시골은 마당이 있기에 인기척이 없어도 눈에 띄지 않는다. 3일간 연락이 닿지 않아도 ‘바빠서 그런가 보다’라고 넘겨지는 일이 많다. 외출 시 갑자기 쓰러진다거나, 밤에 혼자 있다가 위급 상황이 생긴다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구조 안에 있다는 현실이 무섭게 다가온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주변에 내 건강 상태를 의식적으로 말하게 되었고, 그런 말조차 이웃에게는 부담이 될까 걱정하게 된다.

체력은 떨어지고, 일은 여전히 많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육체적 노동이 필요하다. 나도 처음엔 이 일이 재미있었다. 아침마다 밭을 둘러보고 잡초를 뽑고, 고추나무를 지지대로 세우고, 여름이면 말린 고추를 뒤집고, 겨울이면 장작을 패고 쌓는 일, 이 모든 것이 삶의 일부분이자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 노동이 점점 버거워진다. 작년보다 올해 더 힘들었고, 올해보다 내년이 더 힘들 것이라는 게 분명하게 다가온다. 도시에서는 나이를 먹으면 노동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구조가 있지만, 시골은 반대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은 줄지 않고, 오히려 주변의 노동을 더 맡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남성 귀촌자의 경우, 마을 회관 일이나 공동 노동에 동원되는 일이 잦은데, 체력이 떨어져도 예외가 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더욱 힘든 감정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 판단해 일을 줄이기 시작하면 '그 집 요즘 왜 저래'라는 말이 돌아오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없는 삶은 감정적으로도 취약하다

노후에 필요한 건 단순한 식사와 주거의 안정만이 아니다.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는 관계,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관계도 또한 중요하다. 도시에서는 커뮤니티 센터, 노인복지관, 문화강좌 같은 연결 고리가 많지만, 시골에서는 그런 기능이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즉, 이웃이 전부고, 친밀한 관계가 없으면 사실상 사회와 단절된다. 나는 시골살이를 하며 종종 ‘이곳에서 마음을 나눌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이미 오랜 관계망이 있고, 나보다 젊은 사람들은 들어오지 않으니 나는 그 사이에 낀 세대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이런 심리적 외로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고, 그것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시골 노후는 감정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비용은 적게 들지만, 불안은 그보다 크다

많은 사람이 시골살이의 장점으로 비용 부담이 낮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분명 도시보다 집세나 생활비는 적게 든다. 하지만 그것이 곧 안정된 노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많은 변수 때문이다. 농사 실패, 질병, 차량 고장, 급작스러운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금방 생활이 무너질 수 있다. 무엇보다 수입원이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출이 늘어나는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체계가 거의 없다. 도시처럼 의료보험 외의 다양한 보조 시스템이 많지 않고, 공공서비스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시골에선 큰돈이 드는 일이 갑자기 생겼을 때 대처가 어렵다. 내가 최근에 겪은 일 중 하나는, 단열 보수 공사를 하려고 전문가를 불렀는데 시공사 자체가 인근에 없어서 도심에서 불러와야 했고, 출장비만으로도 수십만 원이 더 들었다. 작은 문제 하나가 도시에선 간단히 해결될 일이 시골에선 예상치 못한 지출로 이어진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과연 여기서 오래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시로 돌아가야 할까?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도시로 돌아갈 가능성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아파트 단지 안에 병원이 있고, 복지센터가 있으며, 대중교통이 연결된 도시의 구조는 분명 노후에 더 안전해 보인다. 그런데도 내가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쌓인 정 때문이고, 지금의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이 고요한 삶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면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다. 좁은 공간, 인공적인 소음, 혼잡한 거리,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물리적 스트레스. 무엇보다 시골에서 얻은 이 리듬을 다시 깨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그렇기에 갈등은 계속된다. 도시의 시스템이 필요한 시기와 시골의 평온한 삶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매일이 고민이다. 이 고민은 아마도 노후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선명해질 것이고, 언젠가는 어떤 선택이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선택을 조금 더 미루고 싶다.

나는 어떻게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해서 아무 대비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의 시골살이를 유지하면서도 나이 들어갈 미래를 위한 작은 장치들을 하나씩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병원 접근이 용이한 근교의 도시에 작은 임대주택을 하나 알아보고 있고, 또 하나는 이웃 중 신뢰가 쌓인 분과 서로 돌봄을 교환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해두고 있다. 가족과는 긴밀한 연결이 어렵지만, 온라인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소통하고, 필요한 서류나 정보는 모바일로 관리한다. 무엇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의 루틴을 꾸준히 관리하려 한다. 식사, 운동, 수면은 물론이고, 심리적으로 외로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을 행사나 모임에도 일정 간격을 두고 참여한다. 노후란 결국 혼자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며, 시골이든 도시든 그 준비의 핵심은 나 자신을 돌보는 태도에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나이 들고 싶다

시골살이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노후를 보내기에 어려운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정이 들었기 때문이고, 이 고요한 공간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내가 가꾼 텃밭과 바람이 지나가는 마당, 고추 말리는 그늘 아래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병원은 멀지만, 나는 더 자주 내 몸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사회적 서비스는 부족하지만 이웃의 눈빛에서 어떤 정을 느끼게 된다. 노후는 어디에서 보내느냐보다 어떻게 누구와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지금 그 방법을 찾아가고 있고, 그 여정이 끝나지 않았기에 아직은 이곳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