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34편 : 시골에서 마음을 다치는 순간들: 기대와 오해, 그리고 침묵

eoil0023 2025. 7. 11. 18:33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기대한 것 중 하나는 도시와도 다른 인간적인 관계였다. 도시에서는 익명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익명이 때로는 편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외로움을 깊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골로 내려올 때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고 서로를 기억하는 삶을 상상했다. 처음에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이웃 어르신들이 이름을 물어봤고, 지나가다 만나면 손을 흔들어 주었고, 텃밭에서 일하다가 물을 나눠 마시며 짧은 대화를 나눴을 때 나는 내가 드디어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말 한마디가 오해로 번지고, 사소한 행동 하나가 해석을 낳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말수를 줄이게 되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시골에서 ‘마음이 다치는 중’이라는 걸 자각하게 된 건.

시골살이 현실 : 시골에서 마음을 다치는 순간

기대는 늘 오해와 함께 온다

어느 날, 시골 마을회관에서 김장을 하는 날이었고, 나는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그 일은 사전에 미리 말씀드렸고, 이장님도 “그럼 어쩔 수 없죠”라며 이해하시는 듯 보였다. 그런데 며칠 후, 마을 한 분이 나를 보며 “다 같이 하는 건데 빠지면 좀 섭섭하죠”라고 말했다.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나를 찌르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충분히 설명했고 정중히 양해를 구했지만, 내 사정과 관계없이 마을은 ‘참석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뭘 더 잘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고, 그 질문은 곧 ‘나는 여기에 맞지 않는 걸까’라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시골에서는 말보다 분위기와 묵시적인 기대가 관계의 규칙이 되곤 한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나올 줄 알았다’는 눈빛과, ‘왜 안 왔냐’는 묻지 않는 질문이 오해를 만든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날부터 점점 더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어갔다.

친절 속에 감춰진 질서의 압박

시골의 친절은 정말 따뜻하다. 반찬을 나눠주고, 작업 도구를 빌려주고, 고장난 물건을 손봐주겠다고 나서는 이웃이 있다는 건 도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친절 속에는 그들만의 질서가 있었고, 나는 처음에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순수하게만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고추밭 작업 도중 한 어르신이 내게 다가와 “이건 이렇게 해야지”라며 설명해 주셨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감사 인사를 드리며 그대로 따라 했다. 그런데 다음날, 다른 어르신이 같은 방식으로 하지 않았다며 조용히 내게 “그 집 방식은 요즘 잘 안 써요”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누구 말을 따라야 하는지도 혼란스러웠고,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힘의 균형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단지 배우는 입장으로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누군가에게는 실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그게 상처가 되었다. 친절이 규칙이 되고,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무례로 해석되는 구조 안에서 나는 내 마음을 어디에 둘지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설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시골은 대화보다 해석과 추측이 앞서는 곳이다. 말보다 행동이 더 많이 관찰되고, 침묵은 때로 동의로 간주되거나 반대로 거절로 오해된다. 나는 여러 번 그 침묵 속에서 오해를 받았다. 마을 회의 중에 의견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일에 관심 없는 사람’이 되었고, 모임 이후 따로 자리를 피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은 사람’이라는 낙인처럼 작용했다. 사실은 그날 몸이 안 좋아서 일찍 돌아온 것뿐이었지만 그런 이유는 묻지 않았다. 설명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형성된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도시에서의 ‘익명성’이 오히려 마음의 자유였다는 것을 실감했다. 시골에서는 모든 행동이 기록되고 해석되며, 나도 모르게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런 구조 안에서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면 설명할 기회를 요구해야 하지만, 그 요구조차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기에 나는 점점 더 말을 줄이게 되고, 결국 침묵으로 마음을 감추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조용히 상처받고, 조용히 외로워진다

가장 힘든 건 상처를 받아도 그것을 말할 곳이 없다는 점이다. 도시에서는 친구와 만나 털어놓을 수 있었고, 카페나 술자리에서 감정을 풀어낼 수 있었지만, 시골에선 그런 장면을 만들기 어렵다. 더군다나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이나 오해는 다른 마을 사람들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쉽게 말할 수 없는 주제가 된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상처받고, 조용히 외로워졌다.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모른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대부분이 그렇게 살아간다. 친밀해 보이는 관계 속에 각자의 고요한 상처가 있고, 그 상처는 자연 속에 묻히듯 잠잠하게 이어진다. 나는 한동안 그 감정이 너무 커져서 매일 일기처럼 감정을 적었고, 내가 왜 여기에 있고 이 삶을 왜 선택했는지를 나 자신에게 다시 묻곤 했다. 시골은 외로움이 없는 곳이 아니라, 외로움을 설명하기 더 어려운 곳이다.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내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배운다

시골에서 마음이 다치는 순간들은 대부분 내가 뭔가를 기대했기 때문에 생겼다. 친절이 계속될 거라 믿었고, 이해받을 거라 생각했고, 내가 설명하면 충분히 전해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자주 무너졌고, 그 무너짐은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기대를 접는 연습을 시작했다. 너무 가까이 가지 않고, 너무 많은 걸 바라지 않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휘청거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단히 다듬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고, 때로는 무감정한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으며, 스스로를 자꾸만 검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 나는 조금은 상처에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었다. 시골살이는 정서적인 관계가 깊은 만큼 감정의 기복도 크다. 그러므로 내 감정을 지키기 위해선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시간이 필요했고, 나는 그 과정을 통해 이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워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에 남는다

감정의 상처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고, 이해받지 못한 감정도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을 안고도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곳이 나를 숨 쉬게 하기 때문이다. 상처가 없는 삶은 없다.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한 마음이 다칠 일은 항상 생긴다. 다만 시골에서는 그 상처가 조금 더 천천히 드러나고, 더 오래 남으며, 더 깊이 새겨질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하는 법을 배우고 있고,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시골살이는 자연과의 싸움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감정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일이다. 나는 지금도 완벽하게 조율된 관계를 만들진 못했지만, 최소한 나 스스로를 다치지 않게 지키는 법을 알고 있다. 마음은 여전히 민감하고 감정은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져 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시골살이의 진짜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일,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