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현실 35편 : 마당이 있다는 건 무엇일까: 땅과 나 사이의 거리
귀촌을 결심하고 집을 알아볼 때, ‘마당이 있는 집’을 가장 큰 조건 중 하나로 삼았다. 도시에서의 삶은 언제나 콘크리트 위에 있었고, 땅은 내가 밟는 발 아래 있지만 내 것이 아니었으며, 집은 벽과 창틀 안에 갇힌 공간일 뿐이었다. 그래서 마당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자유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마당, 거기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아 느긋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 강아지가 뛰어다니고 고추가 익어가는 풍경, 그런 장면들을 꿈꾸며 나는 마당이 있는 집을 선택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처음 마주한 마당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잡초는 발목 높이까지 자라 있었고, 땅은 고르지 않았으며, 어딘가엔 개미집이 터져 있었고, 오래된 비닐하우스가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마당은 한눈에 보기에도 관리가 필요했고,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당황했고 동시에 깨달았다. 마당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며, 동시에 나와 함께 살아갈 존재라는 것을.
마당은 쉬는 공간이 아니라 일하는 공간이었다
처음 마당이 생겼을 때 나는 그것이 곧 삶의 여유라고 믿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은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 시작되는 장소가 되었다. 아침에는 닭장 문을 열고, 식물에 물을 주고, 잡초를 한 줌 뽑는 일로 하루가 시작되었고, 해가 중천에 뜨면 흙을 고르고 분갈이를 하거나 퇴비를 섞고, 해가 질 무렵엔 삽을 들고 물길을 정리하거나 떨어진 과일을 주워 담았다. 하루에 마당을 오가는 횟수는 손에 꼽을 수 없었고, 그때마다 작은 일들이 마중을 나왔다. 그러다 보니 마당은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땀을 흘리는 공간이 되었고, 나는 그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마치 작은 노동의 리듬을 익히는 것 같았다. 누구는 ‘마당 있는 집’이라고 하면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실제로는 그 땅 위에 서기 위해 매일같이 손을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일이 점점 부담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마당에서의 노동은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고, 결과에 대한 성과를 따지는 일도 아니었으며, 오로지 나와 땅 사이의 조용한 대화였다. 그 대화 속에서 나는 조금씩 이 집과 친해지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땅을 돌보다 보면 내 마음도 함께 고요해진다
마당에서 잡초를 뽑는 일이 처음에는 귀찮고 고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일이 내 마음을 정리해주는 시간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손으로 흙을 만지고, 작은 풀 하나를 조심스럽게 뽑아내며, 그 아래 숨어 있던 지렁이 한 마리를 마주할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용한 울림이 일었다. 도시에서는 늘 머릿속이 분주했고 생각이 생각을 덮으며 쉬지 않고 돌아갔지만, 마당에서는 그런 사고의 회전이 멈추고 머리를 비울 수 있었다. 나는 마당을 돌보는 것이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풀을 뽑고, 돌을 정리하고, 물을 뿌리는 과정은 마치 내 안의 혼란을 차분히 정돈하는 의식 같았고, 그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감각을 회복했다. 마당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조언하지도 않았고, 판단하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었고, 내가 하는 일에 순순히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 단순한 상호작용이 나를 위로했다. 시골에서 마음이 복잡할 때면 나는 늘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마음은 언제나 조금씩 가벼워졌다.
계절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 곳
마당이 있다는 건 곧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직접 겪는다는 뜻이다. 도시에서도 사계절은 존재했지만 그것은 옷차림이나 커피 메뉴, 에어컨과 난방기기의 작동 여부로 느껴지는 간접적인 변화였을 뿐이다. 하지만 시골의 마당에서는 계절이 눈으로, 코로, 손끝으로 전해졌다. 봄이면 땅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고, 이름 모를 풀들이 여기저기에서 싹을 틔웠다. 여름이면 수분이 많아져 잔디가 폭발적으로 자랐고, 나무의 잎이 짙은 녹색으로 변했다. 가을이면 나뭇잎이 흩날리고 마당을 덮었고, 바람에 흙먼지가 일었다. 겨울이면 마당은 완전히 숨을 쉬지 않는 땅처럼 고요해졌고, 서리가 내린 날엔 흙이 얼어 있었다. 나는 그 변화 속에서 처음으로 계절을 기다리게 되었고, 계절을 돌보게 되었고, 계절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마당은 날씨가 아닌 생명의 시간으로 계절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 흐름을 따라 삶의 속도를 맞추는 법을 배웠다. 이제 나는 계절을 일기예보가 아니라 마당의 상태를 통해 먼저 예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나의 삶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당은 내 삶의 확장된 방이 되었다
도시의 집은 방과 거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요리도, 휴식도, 생각도, 스트레스의 해소도 모두 벽 안에서만 이루어졌고, 그러다 보니 감정도 생각도 쉽게 막히곤 했다. 그러나 시골의 집에는 마당이 있었고, 그 마당은 나의 삶을 확장시켜주는 또 하나의 방이 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마당에 나가 의자 하나 놓고 앉으면 방 안에서 미처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고, 누군가와 통화를 할 때도 방 안보다 마당에서 하는 대화가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가끔은 마당 한 귀퉁이에 돗자리를 펴고 책을 읽었고, 겨울날 햇볕이 좋을 땐 담요를 덮고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마당을 하나의 방처럼 인식하게 되었고, 이 공간이 나의 감정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마당은 단순한 외부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 유연한 방이었고, 어떤 날은 방 안보다 더 나다운 공간이기도 했다.
땅과 나 사이의 거리, 가까워질수록 삶은 단단해졌다
시골살이를 시작한 초반에는 마당에 나갈 때마다 긴장되기도 했었다. 내가 이 흙을 잘 다룰 수 있을까, 이 식물은 언제 물을 줘야 할까, 이 자리는 빛이 잘 드는 곳일까 같은 고민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땅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고, 대신 땅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되었다. 땅은 내가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반응을 달리했고, 그에 따라 나는 다시 배우고 고치고 또 해보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 거리감이 줄어들수록 내 삶도 조금씩 단단해졌다. 마당을 정리하면서 계획이라는 걸 세우기 시작했고, 작은 물건을 어디에 둘지를 고민하면서 공간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감각이 생겼고, 비가 오기 전날 마당의 상태를 살피며 날씨에 대한 민감함도 생겨났다. 땅은 가르침을 주지 않았지만 늘 답을 갖고 있었고, 나는 그 답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변화는 내 삶의 방식 전체에 영향을 주었고, 나는 더욱 느리고 신중하게 하루를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이 마당을 사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당이 있는 집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마당’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마당은 나의 일상을 담는 그릇이고,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는 배출구이며, 사계절을 체험할 수 있는 자연 교실이다. 누군가는 이 마당을 보면 그냥 오래된 시골집의 평범한 앞마당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곳이 나의 변화와 성장을 고스란히 담은 공간이다. 잡초를 뽑던 봄날의 고민도, 여름날 땀 흘리며 흙을 뒤집던 후회의 순간도, 가을날 작은 꽃 하나를 보고 웃었던 날도, 겨울날 얼어붙은 땅을 망연히 바라보던 외로움도 모두 이 마당 위에 있었다. 나는 이 마당을 통해 시골살이를 배웠고,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다시 익혔고, 나 자신과의 대화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 마당이 없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땅과 내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시골살이의 진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