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37편 : 시골에서 ‘아무도 모르게 울던 날’에 대하여

eoil0023 2025. 7. 14. 10:51

울었다. 그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울고 나서야 내가 울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 일도 없었고, 특별히 힘든 사건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하루였고,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햇볕이 들면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 오후쯤, 바람이 조금 불고 잔디 위로 그림자가 들 때쯤 나는 갑자기 이유 없이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지만 왜 흘렀는지 알 수 없었고,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는지도 설명할 수 없었다.
말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 상태로 나는 마당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이미 꽤 오래 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이 공간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마음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던 걸.
그 울음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위로를 바라며 흘린 눈물도 아니었다.
그냥 내 안에 고여 있던 감정이 넘쳐버린 것이었고, 그건 조용하고도 단단한 무너짐이였다.

 

시골살이의 외로움은 소리 없이 쌓인다

시골살이의 외로움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그렇고 그런 그림이 아니다.
모든 게 낯설고 사람도 없어서 쓸쓸하다,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에는 이웃도 있고, 가끔 말을 붙이는 마을 어르신도 있고, 장날이면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관계 속에서도 나는 혼자다.
혼자 사는 게 외로운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외롭다.
누구에게 내 마음을 말해도 그게 끝까지 닿지 않을 것 같은 감정,
누가 들어줘도 진심은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거리감이 있다.
그 거리감은 하루 이틀 쌓이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조용히, 그러면서도 아주 묵직하게 다가온다.
나는 그 외로움을 매일 감추고 살아간다.
밭일을 하면서도, 마을회관에서 인사할 때도, 웃는 얼굴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늘 싸늘했다.
그 감정은 무언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나를 안아주면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와 나 사이가 멀어진 느낌, 내가 나에게도 말 걸지 못하게 된다는 그 상태,
그게 가장 힘들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감정이라는 것

시골살이를 하면서 가장 자주 드는 감정은 ‘말하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절망이다.
말하고 싶은 이유는 명확하다.
내 안에 무언가가 쌓여 있고, 그걸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고, 말로 꺼내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말하지 않는 이유도 분명하다.
그 말이 어디까지 닿을지 모르겠고, 누군가 그걸 진심으로 받아줄 수 있을지 모르겠고,
괜히 꺼냈다가 ‘그 정도로 힘들면 왜 귀촌했냐’는 말을 들을까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침묵을 선택하기로 했다.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말해도 아무 일도 바뀌지 않으리라는 걸 알기에.
그 침묵은 때로는 나를 지켜주는 방어였지만, 또 때로는 나를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넣는 벽이 되었다.
그 벽 안에서 나는 조용히 무너졌고, 그렇게 조용히 울었다.

아무 일 없는 날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

도시에서는 힘든 날이 명확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관계에서 다툼이 있거나, 계획한 일이 틀어졌을 때 그날이 고비였고, 그때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반대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이 오히려 위험한 날이다.
너무 고요하고, 아무 변화도 없고, 모든 것이 일정하게 흐르는 그 하루 안에서 감정이 비어버릴 때가 있다.
그 비어 있음 속에서 지난 감정들이 고개를 들고, 현재의 불안이 실체 없는 그림자로 어른거린다.
나는 그런 날,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고, 별것 아닌 말에 상처받고, 자책에 빠지곤 했다.
그리고 그런 날의 끝은 어김없이 눈물이었다.
마당 끝자락, 나무 그늘 아래에서, 또는 방 안 조용한 새벽 시간에, 나는 그렇게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은 말하지 못한 날들의 무게였고, 견뎌온 시간의 흔적이기도 했다.

“나는 잘 살고 있나”라는 질문이 자주 떠오른다

시골로 내려올 때 나는 분명 뭔가를 기대했다.
조용한 삶, 나다움을 회복하는 시간, 자연과 함께하는 여유.
그리고 그 대부분은 실제로 이루어졌을지 모른다.
나는 지금 조용한 공간에서 살고 있고,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고, 밭일을 하며 계절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살고 있나”라는 질문이 자주 떠오른다.
그 질문은 성취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삶을 사랑하고 있는지, 내가 나를 돌보고 있는지, 지금 이 길이 맞는지를 자주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이 나오지 않는 날, 나는 울게 된다.
어쩌면 울음은 대답을 구하지 않는 방식의 자기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 질문을 매일 던지며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시골살이의 진짜 리얼일지도 모른다.

감정도 손봐야 할 구조물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시골살이에서 집은 고치고, 땅은 돌보고, 도구는 닦고 기름칠을 한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 감정도 그와 똑같은 구조물이라는 걸.
돌보지 않으면 삐걱대고, 쌓아두면 곪고, 방치하면 스스로 무너진다는 걸.
나는 한동안 감정을 그냥 두었다.
‘그럴 수 있지’라고 넘기고, ‘이 정도쯤이야’라고 참았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니까’라며 외면했다.
그러다 어느 날, 말없이 터진 눈물 앞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감정을 닦지 않았고, 감정을 정리하지 않았으며, 감정을 지켜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이후로 나는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글을 읽고 버텼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며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었고, 울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기까지 나는 몇 번이고 혼자 울어야 했다.

지금도 누군가는 조용히 울고 있을지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어딘가에서 나처럼 시골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조용히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울음은 누구도 몰라주고,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으며,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울음이 얼마나 무겁고, 얼마나 진짜였는지를.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였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감정의 외침이었다.
나는 그 울음을 이제 외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울음을 흘려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울음을 통해 조금 더 나를 이해했고, 시골살이를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감정이 무너지는 날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 무너짐 속에서도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 울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