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현실 38편 : 시골살이와 ‘포기하지 않는 법’ - 버티는 힘에 대하여
시골에 내려와 처음 몇 달은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다. 풍경도 낯설고, 사람도 낯설고, 아침의 공기마저 생경했다.
그래서 모든 순간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떤 의미로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함이 시작되었고, 그 익숙함 속에서 반복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반복은 일상의 리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권태나 피로, 그리고 고립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내가 견뎌야 하는 건 단순히 외로움이나 불편함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버텨야 할 건 무너지는 마음, 대책 없는 날씨, 끝없는 육체노동, 이해받지 못한 채 쌓이는 감정,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묻는 ‘계속해야 할까’라는 질문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택이 아니라 버티는 걸 택했다.
버티는 건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었고, 거창한 의지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눈을 뜨고, 밭으로 나가고, 밥을 차리고, 햇살을 받으며 살아내는 것,
그게 바로 ‘포기하지 않는 법’의 시작이었다.
포기하고 싶을 땐 이유가 너무 많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골살이 포기한 사람들은 준비가 부족해서 그렇다”, “계획 없이 내려와서 그런 거다”라고.
그러나 실제로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엔 그 어떤 준비도 아무 소용이 없다.
생각보다 사람과 맞지 않고, 예기치 않게 수입이 끊기고, 갑자기 몸이 아프고,
농작물은 망하고, 예상치 못한 수리비가 생기고, 겨울 난방비가 두세 배로 뛰고,
심지어 내가 여기 왜 있는지조차 헷갈리는 날이 온다.
그때 드는 생각은 단순하다.
‘돌아가고 싶다’, ‘그만두고 싶다’, ‘이게 나한테 맞는 걸까’.
이유는 수도 없이 많고, 하나하나 따져보면 다 말이 된다.
그래서 포기는 논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실제로 떠난 사람들을 보면 그 누구도 이유가 약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었다.
포기할 이유는 늘 너무 충분했고, 문제는 이유가 아니라 감정이었다.
나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흔들렸고, 이유를 붙이며 정당화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어떤 작은 장면이 나를 붙잡았다.
아침 햇살, 마당에 핀 이름 모를 꽃, 이웃의 조용한 인사,
그 사소한 것들이 내가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가 되었다.
버틴다는 건 결코 멋진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버틴다’는 말을 미화하기도 한다.
‘대단하다’, ‘의지가 강하다’, ‘그만큼 간절했나 보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버티는 건 고되고 지저분하고, 때로는 비참하기까지 한 일이다.
나는 스스로가 작아진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침묵했고,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날에도 밭으로 나갔다.
아무도 모르게 지출 내역을 정리하며 한숨을 쉬었고, 밤마다 다음 달 월세와 전기세를 계산하며 잠들었다.
버틴다는 건 그렇게 사소하고 초라한 행위들의 반복이었다.
화려한 열정이나 인생의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오직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무사히 넘기는 일,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마음이 조금 단단해지고,
예전이라면 포기했을 일 앞에서도 ‘조금만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건 강해져서가 아니라, 한 번 더 버티는 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버틴다’는 건 결국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시골살이에서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 더 나은 삶을 향한 전진보다는 지금의 나를 수용하는 일에 가깝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살아가는 날도 괜찮다고 허락하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서도 자존감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뭐든 잘하려고 노력했다.
텃밭도 계획적으로 운영하려 했고, 마을 일도 빠짐없이 참여하려 했고,
블로그도 운영하고 수익도 나야 한다고 다그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 태도는 오히려 내 숨을 조이고, 내가 나에게 실망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도를 줄였고, 나에게 실망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갔다.
하루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못한 건 미루기로 하고,
사람들과 조금 멀어지는 날도 그냥 그런 날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버티는 일이 조금은 쉬워졌다.
그리고 나는 그 버팀이 곧 삶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 가장 큰 위로였다
시골에서 살다 보면 타인의 삶을 자주 관찰하게 된다.
그 관찰은 비교가 아니라 공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처럼 혼자 사는 이웃도, 갑작스레 농작물 망쳐 낙심한 사람도,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상처받은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나만 힘든 줄 알았고, 나만 흔들리는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용히 살아가는 마을 이웃들도 나처럼 매일을 버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쉽게 웃지 않았고, 아무도 자신의 힘듦을 과장하지 않았지만
그 조용한 표정 뒤엔 저마다의 고된 하루가 있었다.
나는 그걸 알게 된 뒤로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고립감이 줄었고, 내가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이해하게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
그것이 시골살이에서 가장 실질적인 위로였다.
포기하지 않는 법은 ‘버틸 이유’를 자주 기억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를 잊었을 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나는 자주 떠올리려 한다.
도시에서 무엇이 나를 떠밀었는지,
어떤 욕망을 비워내기 위해 이곳에 왔는지,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얻고 싶었는지.
그 기억은 흐려지기 쉬웠고, 삶의 반복 속에서 가려지기 쉬웠다.
그러나 그 기억을 꺼내 보는 것만으로도
다시 하루를 살아갈 이유가 생기곤 했다.
비가 오는 날, 창문 밖으로 번지는 안개를 보며,
한 송이 꽃을 정리하다가 작년 봄의 기분을 떠올리며,
나는 내가 여기에 남아야 할 이유를 다시 되짚는다.
그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그저, ‘이곳에 있으면 내가 나다워지기 때문’이라는
단순하고도 강한 이유 하나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날마다 다르게, 하지만 반드시 다시 떠오른다.
나는 아직 완전히 안착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간다
포기하지 않고 버틴다는 건 완전히 이 삶에 익숙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낯설고, 여전히 혼자라는 감정을 느낀다.
어떤 날은 도시의 편리함이 그립고,
어떤 밤은 서울의 불빛이 그립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이 있다고 해서 지금의 삶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고,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일이 내가 매일 해내야 할 중요한 과업이다.
시골살이는 정착이 아니라 유연한 공존이고,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정답을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질문을 계속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아직 완전히 안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고 있다.
그 살아 있음이 곧 포기하지 않는 증거이고,
그 버팀이 이 시골살이를 의미 있게 만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