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현실 41편 : 시골살이와 고립의 경계, 고요함과 고독 사이에서
조용해서 좋았던 그 순간, 그게 시작이었다
처음 시골살이를 시작할때 가장 좋았던 건 조용한 환경이었다. 도시에선 늘 시끄러움이 기본값이었고 사람들의 말소리, 자동차 경적, 창문을 닫아도 들려오던 뭔가의 소음이 나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었지만 이곳은 달랐다. 밤이면 진짜 어둠이 찾아왔고 그 어둠은 소리까지 데려오는 듯했다. 새벽엔 새소리가 먼저 나를 깨우고 그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 고요함은 내게 처음엔 선물이었다. 나 자신을 돌볼 수 있게 해줬고 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빠져나온 듯한 해방감을 안겨줬다. 그러나 그 고요가 길어지고 익숙해질수록 나는 그 조용함의 무게를 인식하게 되었다. 처음엔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이내 조금씩 무거워졌다. 내가 오늘 하루 동안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걸 저녁이 되어서야 깨달았고, 누군가가 나를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느 날부턴가 당연해졌다. 처음엔 선택이었던 고요가 어느 순간엔 조건이 되었고 나를 이 세계로부터 떼어내는 벽이 되었다. 그 벽은 투명했지만 분명했고 나는 점점 그 안으로만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외로움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천천히 스며든다
도시에 살 땐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외로웠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있어서 외로웠고 말은 오가지만 깊이가 없어서 허전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곳을 원했고 그게 시골이었다. 그런데 여기 와보니 외로움이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곳의 외로움은 갑작스럽게 덮치지 않는다. 점점 스며든다. 어느 날 문득 오늘 하루 동안 목소리를 한 번도 내지 않았다는 걸 느끼는 순간,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친 기억이 며칠 전이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외로움은 이미 내 안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의 외로움은 소란 속에서 오는 반사적인 감정이라면, 시골의 외로움은 조용한 고요 속에서 천천히 쌓이고 깊어지는 침전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말수가 줄어들고, 다음엔 표정이 단조로워지고, 그다음은 생각도 조용해졌다. 어떤 감정이 올라와도 표현할 사람이 없다는 건 그 감정이 없어지는 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외로움이 단지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나를 구성하던 요소들이 하나씩 무너져가는 것이라는 걸 절감하게 됐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삶은, 누구에게도 기대할 수 없는 삶이다
시골에서 얻는 가장 큰 자유중에 한가지는 간섭받지 않는 삶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지 않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문을 닫고 며칠을 지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처음엔 그게 참 좋았다.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고 내 속도대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란 점에서 큰 위로가 됐다. 하지만 그 자유는 곧 고립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방해받지 않지만 그만큼 누구에게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와의 갈등도 없지만 위로도 없다. 관심이 없는 만큼 무관심도 깊고, 자유로운 만큼 고립감도 깊다. 내가 힘들어도, 아파도, 기쁜 일이 있어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서서히 나를 고립의 틀 안에 가두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피곤할 만큼 얽혀 있었던 인간관계가, 여기서는 너무 느슨해서 관계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결국 나는 나 자신에게만 의존해야 했고, 그건 의지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말이 줄면 감정도 줄어든다
말을 하지 않으면 생각도 줄어든다. 생각이 줄어들면 감정도 흐려진다. 시골에서 하루를 보내며 말을 할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전화 통화도 점점 줄고, 마트 직원과의 대화도 단답형이 되고, 마을 사람들과는 날씨와 농사 이야기만 오간다. 그렇게 말을 적게 하다 보니 감정의 표현도 서툴러지고, 그 감정들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기 어려워졌다. 내가 지금 지루한 건지, 외로운 건지, 우울한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도시에서는 감정이 촘촘하게 흘렀다. 매일 누군가와 부딪히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빠르게 오갔고, 감정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내게 존재감을 줬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반응이 없다. 감정은 응답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데, 그 응답이 사라진 환경에서 감정은 점점 납작해지고 무력해진다. 내가 웃고 있는지도,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겠는 날이 생긴다. 그게 무서웠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고요가 자리를 잡고, 고요는 감정을 지워버리곤 했다..
도시의 소음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어느 날 저녁, 혼자 앉아 있는데 문득 도시의 소음이 그리워졌다. 예전엔 그 소음이 나를 괴롭혔고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 발소리, 자동차 소리, 누군가의 말다툼 소리조차 그립다. 그건 단지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증거였다는 걸 시골에 와서 알게 되었다. 시골의 고요는 깊고 맑지만, 그 고요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불안도 함께 동반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라디오를 켠다.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아무도 없는 방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속 누군가의 이야기가 그저 배경이 아닌 위로가 된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고요 속에 있지만 완전히 고립되지 않았다는 걸 믿고 싶어진다. 소음이라는 건 단지 듣기 싫은 것이 아니었다. 그건 관계의 신호였고, 삶의 흔적이었다. 그것을 이젠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이곳에 머무는 이유는 나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외로움과 고립감 속에서도 나는 아직도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 외로움도 있었고 후회도 있었고 때로는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내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말이 줄고 감정이 흐릿해졌지만 그 안에서 나는 조용히 내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내가 어떤 감정을 억눌러왔는지를 조금씩 알게 됐다. 도시에서는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모든 감정은 반응하기에 바빴고, 쉼은 일시적인 탈출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감정을 회피할 필요도, 감추려는 이유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도 괜찮은 공간이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회복중인 것을 지도 모른다.
고요함과 고립 사이, 그 좁은 틈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시골살이는 늘 경계 위에 있다. 고요함과 고립 사이, 자유와 외로움 사이, 평온과 무기력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간다. 그 경계를 무너지지 않고 걷는 일이 나의 일상이자 과업이 되었다. 때로는 그 경계에 오래 서 있다가 중심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경계를 의식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고요함 속에 있는 건지 고립감에 빠진 건지 스스로 묻고, 그것을 감지하고 조정하는 것. 그 작은 노력들이 나를 오늘 하루도 지탱하게 한다. 나는 고요를 사랑하지만 고립에 잠식되진 않으려 한다. 나는 외로움을 인정하지만 무감각해지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조용한 이 마을에서 내 이름을 스스로 불러보며 살아간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나의 존재를 기억하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