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42편 : 귀촌 후 알게 된 ‘진짜 나’의 모습, 내가 원래 이랬던가?

eoil0023 2025. 7. 21. 17:05

시골살이가 내면을 들추어 올리기 시작했다

시골살이를 시작한 건 단순하게 도시가 지겨웠기 때문은 아니었다. 숨이 막히는 일상과 늘 곁에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진짜 내가 누구였는지를 모르겠다는 감각에 휩싸였다. 시골살이는 그 모든 것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기회처럼 보였다. 막상 시골로 내려와보니 그 조용한 환경은 생각보다 더 깊은 침묵을 제공했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마주해야만 했다. 시골살이 초반에는 ‘이런 게 나였나’ 싶은 순간들이 쏟아졌고 나는 매일같이 낯선 자아와 대면했다. 도시에서 나는 사교적인 사람이었다고 믿었지만 시골살이를 시작하자 외부 자극 없이 조용히 있는 시간이 더 편안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사람 없는 풍경에 불안해할 줄 알았던 내가, 오히려 그 고요를 반기고 있었고 그 낯선 적응력은 내가 알던 ‘나’와는 전혀 달랐다. 그렇게 시골살이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 진짜 나답게 존재하는지를 조금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시골살이 귀촌후 나의 진짜 모습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러나 결국 표현하게 되는 곳

시골살이를 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건 내 감정을 사용하는 법이었다. 도시에서는 감정을 대체로 반사적으로 사용했다. 기분 좋으면 웃고 불편하면 피하고 속상하면 표정으로 드러냈다. 그런데 시골살이는 그런 감정 표현이 무용한 공간이었다. 집 밖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도 그 피곤함을 공유할 사람은 없고, 기쁜 일이 생겨도 웃을 사람이 없다. 시골살이는 감정을 나눌 상대가 없다는 전제 위에 성립되었다. 그래서 처음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그냥 무시하게 됐고 어느새 무뎌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감정이라는 걸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다뤘다. 시골살이라는 공간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게 아니라 끌어안게 만든다. 외롭다는 말조차 할 데가 없어 나 자신에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고 서운한 감정도 오롯이 나만의 언어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게 시골살이는 감정이란 걸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었고 그 안에서 나는 감정을 감추지 않고 스스로 알아차리는 사람으로 변했다.

시골살이 안에서 정리된 삶의 욕망

도시에서 나는 늘 누군가보다 앞서가고 싶어했다. 무엇을 하든 경쟁이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성과 중심의 사회 속에서 나는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시골살이를 하면서 그런 욕망들이 의미 없다는 걸 하나씩 깨달았다. 시골살이의 리듬은 경쟁이 아닌 순응이었다. 자연의 시간표에 맞춰 살아야 했고 내가 아무리 서둘러도 봄은 3월이 되어야 오고 감자는 5월이 되어야 캘 수 있다. 그런 환경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지 않았다. 시골살이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도록 했고 남보다 앞서는 것보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는 게 더 중요해졌다. 도시에서 그토록 갈망했던 인정은 이곳에서는 스스로를 돌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시골살이는 내 안에 숨어 있던 욕망의 종류와 우선순위를 다시 쓰게 했다.

느림을 받아들이자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시골살이의 시간은 도시와는 다르게 느리게 흐른다. 도시에서는 늘 급했다. 지하철 시간, 업무 마감, 미팅, 일정 사이를 쪼개며 분 단위로 살았다. 그런데 시골살이에서는 그런 시간 개념이 통하지 않았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단순한 흐름이 반복되었고 처음엔 그 느림에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여유를 배웠고 관찰력을 키웠고 오래 보고 오래 생각하는 법을 알게 됐다. 시골살이의 느림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지나쳐온 감정과 생각들이 하나둘 떠올랐고 나는 나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리듬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지를. 결국 시골살이는 느림을 통해 나를 마주하게 만들었고 그 마주침은 이전에 없던 진정한 자기이해로 이어졌다.

시골살이는 나를 중심에 두는 법을 가르쳐줬다

도시에서는 늘 타인의 눈치를 먼저 살폈다. 상사의 기분, 친구의 반응, 사회의 기대치. 나는 그런 관계 속에서 자주 흔들렸고 나 자신은 늘 뒷전이었다. 그런데 시골살이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가 오늘 텃밭에 나가지 않으면 내일의 수확이 없다. 내가 밥을 짓지 않으면 오늘은 굶어야 한다. 시골살이 속의 하루는 내 선택이 곧 삶의 결과로 이어지는 구조였고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먼저 챙기기 시작했다. 건강을 살피고 감정을 살피고 내가 편안한 방식으로 일을 배치했다. 그렇게 시골살이는 ‘나 중심의 삶’을 허락했고, 그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생존이자 존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자연과 동화되며 알게 된 본능적인 안정감

도시에서의 자연은 인공적인 것이였다. 공원, 가로수, 벽면 녹화 같은 조형물에 가까웠다. 그러나 시골살이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었다. 비 오는 날의 땅 냄새, 들판에서의 바람, 계절의 온도 차이는 단순한 풍경이 아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흙을 만지면 마음이 안정되고, 새소리를 들으면 숨이 고르게 쉬어졌다. 시골살이는 자연을 감상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자연 안에 스며드는 삶을 가능하게 했다. 그 안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편안해졌고 자연이란 존재는 내 감정과 신체를 회복시켜주는 가장 직접적인 치유임을 알게 됐다. 그렇게 시골살이의 매일은 자연이라는 공간에서 나를 재정비하는 시간이 되었다.

시골살이가 보여준 나의 단단함과 유연함

처음 시골살이를 시작할 때 나는 내가 약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고립에 약할 거라 믿었고 불편함에 쉽게 지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점점 단단해졌다. 고장난 수도를 직접 고치고, 멧돼지에 대비해 울타리를 만들고, 갑작스러운 폭우에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새벽까지 흙을 퍼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의외로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동시에 시골살이는 내게 유연함도 요구했다. 예상대로 되지 않는 일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힘, 하루의 계획이 엎어져도 다시 계획을 짜는 능력, 그 모든 게 시골살이를 통해 길러졌다. 결국 시골살이는 나에게 ‘버텨내는 기술’과 ‘넘기는 기술’을 동시에 가르쳐준 셈이 되었다. 

시골살이란 거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피하지 않는다

시골살이는 나를 숨길 수 없는 환경이다. 도시에서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상 속에서 내 진짜 모습은 여러 겹의 역할로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시골살이는 가면이 필요 없고 쓸수도 없다. 누가 나를 평가하지도 않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도 크게 관심 없다. 그래서 나는 가식 없이 살 수 있었다. 동시에 그렇게 드러나는 내 모습은 초라할 때도 있었고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골살이 덕분에 나는 그 모든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안의 무기력함, 나태함, 불안함, 그리고 의외의 강함까지도. 나는 더 이상 그런 나를 부정하지 않는다. 시골살이라는 정직한 환경이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이었다.

시골살이는 내가 누구인지 묻고 또 묻는 생활이었다

귀촌 후 시골살이를 하며 나를 정말 많이 다시 보게 되었다. 그동안 어떤 역할로 살아왔는지, 무엇에 의지해 살아왔는지, 어떤 감정을 외면하고 있었는지. 시골살이는 그 모든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 질문에 도망치지 않고 하나씩 답해보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원래 알던 내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됐고, 진짜 나는 시골살이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시골살이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해체였다. 그 해체를 거쳐 나는 다시 조립되었고, 그 조립된 모습은 예전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욱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시골살이는 내게 묻는다. ‘넌 누구니?’ 나는 오늘도 그 질문에 답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