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43편 : 도시에 두고 온 것들 - 관계, 꿈, 기회, 그리고 가능성

eoil0023 2025. 7. 23. 21:18

시골살이를 시작하며 도시에 남겨놓고 온 것들

시골살이를 시작할 때, 나는 최대한 짐을 줄여야 했다. 이사 트럭에 다 실을 수 없는 것들, 남겨야 할 가구, 옷, 책들, 일상의 무게와 흔적을 하나씩 정리해 가며 나는 내 삶의 절반을 도시에 두고 나왔다. 물리적인 짐만 남겨진 게 아니었다. 도시에선 분명 나의 일부였던 것들이 시골살이라는 새로운 일상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처음엔 ‘정리했다’고 믿었고, 시골살이의 시작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도시의 잔상들이 계속 떠올랐다. 사람들과의 관계, 내가 그리던 꿈, 도시에서 마주쳤던 크고 작은 기회들, 그리고 그 모든 가능성들까지. 시골살이는 나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도시에서 포기하고 남겨둔 것들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일상이기도 했다.

시골살이 : 도시에 두고 온 것들

 

사람들과의 관계, 시골살이 속에서 더 멀어진 연결

도시에서의 나는 많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직장 동료, 오래된 친구,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들까지, 매주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하고, 누군가의 근황을 듣고, 때로는 고민을 나눴다. 그런데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그런 관계의 밀도가 점점 옅어졌다. 연락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만나자는 말도 점점 사라졌다. 처음엔 거리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삶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시골살이의 하루는 전혀 다른 리듬을 갖고 있었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친구들과 공감할 수 있는 주제조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농사 이야기, 마을 회의, 겨울철 보일러 관리 같은 일상은 도시 친구들에게는 너무 낯선 주제였고, 반대로 그들의 이야기 또한 이제는 내게 현실감이 없었다. 그렇게 시골살이는 나와 도시 사람들 사이의 공감대를 점점 지워갔고, 나는 점점 더 깊은 고립감을 느끼게 됐다. 혼자 있는 시간은 점점 익숙해졌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그리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시골살이 속에서 흐려진 ‘꿈’이라는 단어

도시에 있을 때, 나는 꿈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곤 했다. 어떤 자격증을 따겠다는 계획, 어떤 직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다짐, 혹은 가보고 싶은 나라에 대한 기대 같은 것들이 내 일상을 채웠다. 그런데 시골살이를 시작한 이후로 나는 점점 그 ‘꿈’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시골살이는 구체적인 생존을 요구했다. 오늘 먹을 밥, 내일 날씨, 다음 주에 심을 작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내 시간을 점령했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먼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게 됐다. 처음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의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시골살이 속의 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지만,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시골살이는 나에게 현실적인 삶을 가르쳐줬지만, 동시에 ‘꿈’이라는 감각을 조금씩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시골살이와 ‘기회’라는 단어의 거리

도시는 매일매일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기도 하고, 평범한 모임이 뜻밖의 프로젝트로 이어지기도 했다. 기회는 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잡기 위해 항상 준비된 상태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시골살이를 하면서 기회라는 단어는 점점 멀어졌다.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고, 정보는 느리게 도착하고, 우연한 만남조차 드문 일상이었다. 물론 시골살이도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귀농 창업, 로컬 브랜드, 농촌 체험 교육 같은 일들이 가능하지만, 그것은 도시의 기회와는 결이 다르다. 도시는 선택이 많은 대신 치열했고, 시골살이는 선택이 적지만 지속적이었다. 시골살이 속에서의 기회는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차이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시골살이에서 기회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흙 속에서 묻어나오는 것이란 걸.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그리움

시골살이를 하면서 감정중에 가장 자주 떠오르는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 도시의 분위기에 대한 그리움, 무엇보다 가능성에 대한 그리움. 도시에 살 때는 늘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가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내가 움직이면 뭔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시골살이 속에서는 그런 기대가 줄어든다. 내가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어떤 일은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고, 어떤 일은 마을의 분위기에 따라 멈추기도 한다. 그래서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점점 추상적인 감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것이 곧 상실은 아니었다. 시골살이도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어떤 것을 그리워하는지를 통해, 여전히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골살이라는 일상 속에서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찾는 중이었다.

시골살이로 인해 달라진 나의 기준들

도시에서 살 땐 많은 걸 남들과 비교하며 살았다. 나보다 잘난 사람, 더 가진 사람,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자꾸 작게 만들었고, 그 작음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시골살이를 하면서 그런 비교는 거의 사라졌다. 비교할 대상이 없어진 것도 있지만, 비교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골살이는 나에게 만족이라는 감각을 일상적으로 가르쳐줬고, 소소한 성취에 대한 기쁨을 체화시켰다. 감자를 처음 수확했을 때의 감동, 장작을 직접 쪼개고 불을 지필 수 있다는 뿌듯함, 누구의 시선도 필요 없이 나만의 기준으로 하루를 평가하는 습관이 생겼다. 시골살이는 나의 기준을 ‘밖’이 아닌 ‘안’으로 가져오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외부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다. 도시에서 두고 온 수많은 기준들을 떠나보낸 후, 비로소 내가 스스로 세운 기준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그립고, 가끔은 그리운 것들

아무리 시골살이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도시에서 남겨놓고 온 것들이 가끔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사람들과 북적이던 카페, 길거리에서 들리던 음악, 갑작스런 야식 모임, 밤늦게까지 불 켜진 창들. 그런 도시의 풍경들은 시골살이의 조용함 속에서 불쑥 떠오른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내가 있었다. 활기차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내가, 누군가와 웃고 떠들며 가능성을 좇던 내가. 시골살이는 나를 조용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런 날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후회는 아니다. 다만 내가 한때 다른 리듬으로 살아갔던 존재였다는 걸 잊지 않으려는 노력일 뿐이다. 시골살이는 그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품고 살아가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도시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도시에서의 나와 시골살이 속의 나는 결국 같은 사람이고, 나는 그 모든 기억들을 끌어안은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시골살이는 버림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그거 다 포기한 거 아니냐고.’ 도시에서의 자리, 인간관계, 기회, 가능성. 나는 그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골살이는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었다고. 도시에서의 모든 것이 소중했지만, 나는 그것을 내려놓고 이 삶을 선택했다. 대신 이곳에서 다른 관계, 다른 꿈, 다른 기회, 그리고 다른 가능성을 만났다. 시골살이는 버림이 아니라 방향의 전환이었고, 나는 지금도 그 방향 속에서 나만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도시에 두고 온 것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고, 나는 그것들을 아직도 그리워하면서도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이 시골살이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일도, 이 조용한 마을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심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