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44편 : 버텨낸 시간이 쌓여 나를 만든다

eoil0023 2025. 7. 25. 19:29

시골살이의 첫 번째 조건, 버티는 힘

시골살이를 처음 시작했을 땐, 낭만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텃밭을 가꾸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책하고, 계절에 맞춰 먹거리를 준비하는 삶이 기대됐다. 그러나 실제 시골살이는 낭만보다는 버티기의 연속이었다. 전기도 끊기고, 수도도 얼고, 농작물은 예상과 다르게 자라지 않았다. 시골살이는 그런 변수를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매일이 시험 같았다. 익숙지 않은 생활 방식, 낯선 이웃, 불규칙한 수입, 그리고 외로움. 그 모든 것을 버티지 않으면 시골살이는 지속되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뭔가 힘들면 잠깐 쉬거나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았다. 하지만 시골살이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버티는 것이 기본이었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익숙해지는 게 시골살이의 리듬이었다. 나는 그 리듬에 익숙해지기 위해 버텼고, 그 버팀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었다.

시골살이는 버티는 힘이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입안에서만 맴돌았던 시간들

시골살이를 하면서 수없이 그만두고 싶었다. 비 오는 날 지붕에서 물이 샐 때, 냉골 같은 방에서 감기에 걸려 끙끙거릴 때, 혼자 밥을 먹다 눈물이 났을 때, 도시 친구들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질 때마다 마음속엔 ‘도시로 돌아가야 하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건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내가 결정한 길이었기에 중간에 포기하는 모습은 나 자신에게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시골살이는 끊임없이 나를 시험했고, 나는 스스로를 설득해야 했다. 오늘 하루만 버티자, 이번 겨울만 지나보자, 한 철 농사만 해보자. 그렇게 시골살이는 하루하루를 넘기며 나를 단련시켰고, 말로는 꺼내지 못한 후회의 감정들을 그저 삶 속에 흘려보내는 법을 익히게 했다. 결국 그 모든 생각들을 품은 채, 나는 또 하루를 버텨냈고 그렇게 하루가 한 달이 되었고, 계절이 지나면서 나는 시골살이의 한 사람으로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시골살이에서 버티기란 곧 살아 있다는 증거

시골살이는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는 않다.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 없는 불편함을 선물한다. 도시에서의 편의성은 당연하지 않고, 여기서는 물을 한 바가지 끓이기 위해도 준비해야 할 게 많다. 겨울엔 장작을 쪼개야 하고, 여름엔 잡초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시골살이는 그런 고단한 일상의 반복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내가 그것을 버텨냈다는 뜻이고, 그 버텨낸 시간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도시에서는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살아있다는 신호였다면, 시골살이는 버티고 있는 것이 살아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구의 평가도 받지 않아도,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다시 흙을 밟고 물을 주고 밥을 지었다면 나는 살아있는 것이고, 그 하루가 또 한 조각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시골살이 속에서 나는 그렇게 조용히 존재의 의미를 재정의해가고 있었다.

흔들릴 때마다 ‘왜 시작했는가’를 떠올렸다

나는 버티기 어려운 순간마다 늘 처음 시골살이를 결심했을 때를 떠올리곤 했다. 복잡한 도시의 인간관계에 지쳤고, 늘 시간에 쫓기며 사는 방식이 버거웠고, 돈보다 시간을 더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 마음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지금의 고단함은 그 결정의 일부였다. 시골살이는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고, 그 선택은 결코 충동적이지 않았다. 나는 무엇인가를 바라고 내려온 게 아니라, ‘무엇을 멈추기 위해’ 시골살이를 택했다. 그래서 어려운 순간마다 되묻는다. 지금이 정말 끝내야 할 순간인가? 아니면 흔들림의 한 파도인가? 그 물음에 답하면서 나는 나를 붙잡았고, 그 물음이 버티게 만들었다. 시골살이는 매 순간 이유를 묻는 시간들이었고, 그 물음 끝에 도달할 때마다 나는 또다시 한 계절을 지나게 되었다.

시골살이의 시간은 버텨낸 만큼 무르익는다

도시의 시간은 속도가 전부였다.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연결되고, 빠르게 반응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공포가 일상이었다. 그러나 시골살이의 시간은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의 시간은 무르익는 것이다. 당장 심은 씨앗이 다음날 열매를 맺지 않듯, 시골살이는 무언가를 천천히 쌓아가는 일이다. 농사도, 관계도, 나의 삶도 전부 시간이 필요했다. 시골살이는 버텨야만 익는 시간들이었고, 그 시간 속에서 삶이 천천히 완성되었다. 내가 오늘 한 일이 내일 바로 보상되지 않는 구조는 처음엔 낯설었지만, 오히려 그 구조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즉각적인 피드백 대신 차곡차곡 쌓이는 일상이 있었고, 그 일상이 어느 날 보상을 주는 방식은 훨씬 더 깊고 안정적이었다. 시골살이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주는 보상이고, 그 기다림의 자격은 바로 ‘버텨낸 시간’이었다.

시골살이의 버팀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살아가게 했다

도시에서는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늘 있었다. 실수하면 바로 평가받고, 약점을 드러내면 불편해졌으며, 감정조차 관리해야 했다. 그러나 시골살이는 누구도 그런 완벽을 요구하지 않았다. 비 맞은 채로 일해도, 먼지가 잔뜩 묻은 옷을 입어도, 머리를 감지 못한 날이 있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골살이 속의 삶은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일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내 부족함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버텨내는 과정에서 드러난 나의 모습은 어쩌면 가장 진짜 같았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는 삶이 아니라, 나의 리듬과 감정에 맞춰 사는 법을 익혔고, 그 자연스러움이 곧 회복이 되었다. 시골살이는 나를 꾸미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고, 그 자유로움은 다른 어떤 조건보다 값졌다. 나는 더 이상 도시의 시선에 갇히지 않았고, 시골살이 덕분에 스스로를 긍정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시골살이의 반복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힘들게 느껴졌던 일들도 반복되면 익숙해지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 화목보일러에 불을 지피고, 닭장 문을 열고, 텃밭을 둘러보고, 마을 방송에 귀 기울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 그 일상이 반복될수록 나는 그 속에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반복은 나를 단조롭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반복은 나를 단련시켰고, 예상 가능한 생활 패턴 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시골살이는 매일 새로운 변화보다 매일의 반복을 통해 나를 훈련시켰고, 그 반복이 축적되며 나는 단단해졌다. 도시에서는 변화가 성장이었다면, 시골살이에서는 반복이 성장의 도구였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손이 먼저 반응하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지점을 찾게 되는 시골살이의 리듬. 그 리듬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외부의 평가나 성과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버텨낸 시간은 그냥 시간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시골살이를 버텼다는 말은 단순히 ‘참았다’는 의미 이상이였다. 그건 견딘 시간이고, 통과한 감정이며, 이겨낸 선택이었다. 버텨낸 만큼 나는 성장했고, 시골살이라는 삶 안에서 내 자리를 조금씩 만들 수 있었다. 버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울면서 버텼고, 때로는 아무 감정 없이 버텼으며, 어떤 날은 스스로를 욕하며 버텼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전부 의미가 있었다. 시골살이는 그렇게 버티며 쌓는 삶이었고, 나는 이제 그 삶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오늘도 해는 뜨고 또 진다. 나는 또 하루를 견디고 있다. 그러나 그 견딤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그 하루는 다시 나를 조금 더 깊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버텨낸 시간들이 결국 나를 만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