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현실 47편 : ‘누구와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나와 살 것인가?’
시골살이에서 혼자라는 의미를 처음부터 다시 묻다
시골살이를 처음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한 건 '혼자라는 감각'이었다. 도시에서의 혼자와 시골에서의 혼자는 완전히 다르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도 혼자였고, 시골은 물리적으로 정말 혼자였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큰 파장을 만들었다. 도시에서는 나 혼자 밥을 먹어도 옆 테이블의 수다 소리, 길거리의 불빛,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속에서 외로움을 감출 수 있었다. 하지만 시골살이는 달랐다. 저녁이 되면 온 세상이 조용해지고, 불 켜진 집이 몇 개 없는 마을은 내 방 안의 고요함을 더욱 크게 만들어줬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혼자'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나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깊게 고민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사람 대신 나와 사는 법을 배운다
도시에서는 늘 누군가와 함께했다. 동료, 친구, 가족, 연인, 심지어는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내 감정의 방향에 영향을 줬다. 하지만 시골살이 안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이 나 혼자였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점점 나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나는 나와 잘 지내고 있는가?’ 처음에는 그 질문이 어색했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나와 오래 있자 오히려 낯설었다. 감정이 무뎌질 때도 있었고, 말없이 흘러가는 하루에 답답함을 느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시골살이라는 환경은 그런 불편함을 피하지 못하게 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나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불편하고, 어떤 감정에 민감한지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나의 취향 탐색이 아니었다. 마치 타인과 새로 관계를 맺듯, 나 자신과 진짜 관계를 맺기 위한 과정이었다.
감정의 주인이 된다는 것
시골살이에서 겪은 가장 인상 깊었던 변화 중 하나는 감정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 일이었다. 도시에서는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감정이 휘둘렸다. 누군가의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 기분이 가라앉고, 불친절한 응대에 하루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시골살이에서는 그런 외부 자극이 거의 없다. 결국 감정을 유발하는 건 자연과 나 자신뿐이었다. 그 결과, 나는 내 감정을 나 혼자 책임져야 했다. 외롭다고 해서 누굴 탓할 수도 없고, 무기력하다고 해서 도피할 공간도 없었다. 그러자 나는 스스로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감정이 흐를 수 있도록 둔다, 흘러가는 감정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감정을 피하지 않고 관찰한다. 이런 감정 관리 방식은 시골살이 안에서 조금씩 습관이 되었고, 어느 순간 나는 감정의 주도권을 되찾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골살이는 그런 단련의 시간을 조용히 반복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을 돌보는 연습
시골살이에서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 도시에서는 몸이 아프면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면 되고, 배달을 시키면 한 끼는 해결됐다. 하지만 시골살이 안에서는 모든 것을 내가 직접 결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오늘 무얼 먹을지, 어떻게 잘 잘지, 어떤 일을 먼저 할지 모두 나의 몫이었다. 이 자율성은 때론 부담이 됐지만, 동시에 진짜 돌봄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나는 처음으로 내 몸의 피로를 민감하게 느끼기 시작했고, 정신적인 지침도 외면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이 지쳤을 땐 하루 종일 일을 멈추고 흙을 만지기도 했고, 감정이 넘칠 땐 혼자 숲길을 걸으며 정리했다. 시골살이는 그렇게 ‘나 자신을 챙기는 삶’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돌봄이 아니라, 온전한 자기를 향한 존중이었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법
시골살이의 가장 큰 선물은 ‘조용함’과 '평화'이다. 그 조용함은 처음에는 공허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서 미세한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내 안의 목소리. 도시에서는 외부의 소리에 밀려 내면의 소리는 묻혔다. 하지만 시골살이 안에서 나는 ‘지금 뭐가 불편한지’, ‘왜 자꾸 불안한지’, ‘무엇이 나를 흔드는지’에 대한 신호들을 놓치지 않게 됐다. 어느 날, 그냥 텃밭 앞에 앉아 있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별일 없는 날이었지만 이상하게 울컥했다. 그때 비로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나는 외롭지 않다고 착각하고 있었구나.’ 이처럼 시골살이는 감정을 속이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진실한 감정을 마주하면서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운다. 이건 누구와 살아도 경험하기 어려운 감정이고, 오직 나와 함께 살아가는 시골살이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외부 시선 없이 존재하는 법을 익히다
시골살이의 시간은 외부의 시선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시간이다. 도시에서는 늘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을 의식하곤 했다. SNS에 올릴 사진을 고민하고, 모임에서 어떻게 보일지를 계산하며, 심지어는 어떤 옷을 입고 나갈지도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선택하곤 했다. 하지만 시골살이를 시작한 이후, 그런 것들은 사라졌다. 하루 종일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있어도, 얼굴에 잡티가 생겨도, 누가 볼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처음엔 이게 정말 괜찮은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자유로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해방감을 줬다. 타인의 시선 없이 살아간다는 건 단순히 외모나 생활 방식의 문제를 넘어서, 존재 자체를 그대로 허용받는다는 의미였다. 시골살이는 나라는 사람을 그대로 두는 데 익숙해지게 만들었고, 나는 조금씩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이 감정은 도시에서 절대 얻을 수 없는 값진 변화였다.
진짜 혼자와 진짜 자유 사이의 간극
많은 사람이 시골살이를 자유라고 생각한다. 자연 속에 사는 것, 시간에 쫓기지 않는 것, 타인의 간섭 없이 살아가는 것. 하지만 그 자유는 동시에 깊은 혼자임과 연결돼 있다. 진짜 혼자라는 것은 외부의 구조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책임도, 평가도, 가이드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정말 자유롭다. 하지만 그 자유는 매우 무섭기도 하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하루는 텅 빈 채 흘러간다. 결국 시골살이라는 자유는 내가 나를 스스로 통제하고 움직여야만 유지된다. 이때 ‘나와의 관계’가 약하면 자유는 곧 혼란이 된다. 나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떤 날은 자유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반복된 날들 속에서 나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법을 배웠다. 감정이 무너지는 날에도, 동기 없이 멈춘 날에도, 내 스스로를 다독여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익혔다. 그렇게 시골살이는 나를 단련했고, 진짜 자유는 결국 ‘나와 잘 사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걸 알게 했다.
관계에서 벗어난 관계
시골살이는 사람과의 관계가 도시에 비해 약하다. 처음에는 그게 불안했다. 도시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람들과 마주쳤고, 작은 인사와 대화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며칠 동안 단 한 사람과도 대화하지 않고 하루가 끝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관계 없는 삶’을 살아봤고, 그 속에서 ‘관계에 대한 본질’을 새로 이해하게 됐다. 진짜 관계는 꼭 자주 봐야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여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와의 관계였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타인을 이해할 수도 없고,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타인을 진심으로 대할 수 없다. 시골살이는 이런 내면의 관계를 먼저 정리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정돈된 마음은 아주 작은 인연에도 깊은 연결을 만들게 했다. 결국 시골살이는 나를 사회에서 떨어뜨리는 삶이 아니라, 더 단단한 관계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나와 잘 사는 법을 익히는 시간
시골살이는 누구와 사는지보다 ‘어떻게 나와 사는지’를 끝없이 묻는 삶이다. 누구와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 있지만, 나 자신과의 관계가 건강하면 혼자 있어도 풍요롭다. 도시에서는 자주 타인을 탓한곤 했다.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골살이를 하면서 그 모든 관계의 뿌리가 결국 ‘나와 나’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지금, 타인이 아닌 나와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은 처음엔 낯설고 두려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장 안정된 관계가 되었다. 하루하루 나의 감정을 살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 자신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골살이는 그 일을 매일 연습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은 타인 없이도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었다. 이 모든 감정과 변화는 오직 시골살이였기에 가능했고, 지금 이 시기이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삶의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