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현실 6 : 시간이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 가면 시간이 많고 한가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일, 예고 없는 변수, 마을과 자연이 요구하는 수많은 의무 속에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간다.
귀촌을 고민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시골 가면 좀 여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일찍 일어나 산책하고, 텃밭 좀 손보고, 낮에는 독서나 하면서 보내겠지’라고.
그런데 실제로 시골살이를 해보니,
그 ‘한가한 하루’는 거의 오지 않는다.
시골의 시간은 도시보다 느리게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빠르게, 더 급하게, 더 바쁘게 돌아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시에서 자동화되거나 위임됐던 일들이
시골에서는 모두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구 하나가 나가면 직접 갈아야 하고,
비가 많이 오면 배수구를 점검해야 하며,
닭이 병들면 직접 알아보고 치료해야 하고,
마을 회관에서 전화가 오면 일손을 놓고 참석해야 한다.
“자연과 함께 여유로운 삶”이라는 말은
시골에서 단 한 해도 살아보지 않은 이들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개념에 불과하다.
시골살이는 예상보다 바쁘고,
그 바쁨은 누구 탓도 아니며,
그런 구조 속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지
이제 이야기해보려 한다.
하루는 ‘일출’과 함께 시작된다
도시에서는 알람이 울려야 눈을 떴지만,
시골에서는 닭이 울고, 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보통 새벽 5시~6시에 일어난다.
하루 일정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먼저 텃밭 순찰을 한다.
어제 뿌린 비료가 잘 스며들었는지,
벌레가 생기진 않았는지,
혹은 고라니가 다녀간 흔적은 없는지를 본다.
그 다음은 닭장 청소와 먹이 주기,
장작 상태 확인,
우편함과 마을 게시판 체크,
마당 정리,
고장 난 물건 있나 확인,
이런 일들이 ‘하루의 시작’이다.
시간은 이미 오전 8시다.
‘예정된 하루’는 거의 없다
시골의 하루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장님 전화가 와서
“오늘 오후에 마을 도로 정비 작업 있으니 나오세요.”
이러면 계획했던 영상 편집은 무산된다.
혹은
“○○댁이 집 수리하는데 좀 도와주셔야겠대요.”
이런 부탁은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다.
또 비가 오면
배수로 청소, 빗물받이 체크,
우천 대비 방수포 재설치 등
그날은 그대로 날아간다.
도시에서는 ‘내 일정’이 우선이었지만,
시골에서는 ‘자연의 흐름’과 ‘마을 일정’이 우선이다.
내 하루는 늘 그 틈에서 조정된다.
점심은 빠르게, 오후는 생존이다
점심은 간단하게 먹는다.
국 하나, 반찬 두세 가지.
직접 수확한 채소로 금방 만들지만,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다.
오후에는 본격적인 육체 노동이 들어간다.
- 텃밭 김매기
- 작물 비닐 덮기
- 닭장 보수
- 비닐하우스 지지대 세우기
- 불쏘시개용 나뭇가지 정리
- 쓰레기 분리해서 마을 소각장으로 운반
이런 일들은 미루면 다음 날 두 배가 되기 때문에
몸이 피곤해도 그날 끝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엔 ‘정해진 시간’이 없다.
비 오기 전까지, 해 지기 전까지,
기온 내려가기 전까지.
‘자연의 조건’이 마감 시간이다.
마을 일정은 의무다
시골에서 마을 행사는 선택이 아니다.
단순한 친목회가 아니라 공동체 유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마을 제사 (참석 안 하면 어르신들이 서운해함)
- 환경정비의 날 (거의 매달 있음)
- 도로 정비 / 배수로 정비 / 공동구역 정리
- 경로당 행사 보조
- 이장님 호출로 인한 긴급회의
나는 어느 날 편집 마감 때문에
마을 일정을 빠졌는데,
다음날 “젊은 사람인데 왜 안 나왔냐”는 이야기를 돌려 들었다.
시골에서 ‘안 나오는 사람’은 공동체 밖의 사람이 된다.
그래서 나도 마감은 새벽에 하고
마을 일은 낮에 한다.
이게 가능한 삶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이곳의 리듬이다.
저녁은 짧고, 밤은 길다… 하지만 쉴 수 없다
저녁이 되면 에너지는 거의 바닥이다.
하지만 ‘시골의 저녁’은 도시의 저녁과 다르다.
밥 먹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리의 시간이다.
- 장작 더미 다시 쌓기
- 불쏘시개 준비
- 음식물 쓰레기 땅에 묻기
- 내일 먹을 반찬 미리 준비
- 도구 닦고 정리
- 내일 날씨 확인하고 계획 재정비
그리고 마지막엔 블로그 글을 쓰거나
콘텐츠 작업, 수입 활동을 한다.
이 시간이 보통 밤 11시~12시.
눈을 감으면 바로 아침이다.
어제의 고단함을 회복할 시간도 없이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시골살이는 체력전이다
“시골은 나이 들면 내려가 살기 좋죠.”
나는 이 말을 들으면 반대로 말하고 싶다.
젊을 때 아니면 못 버틴다.
시골은 체력, 멘탈, 인내, 자립능력
이 4가지가 버티는 힘이다.
나는 도시에서 만보도 안 걷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하루 15,000보 이상을 걷는다.
매일 삽질, 나무 패기, 계단 오르기, 물 나르기.
병원은 멀고, 약국도 드물기 때문에
아프면 손해다.
그래서 예방이 중요하고,
생활 습관이 달라진다.
건강식, 규칙적인 수면, 자가 처방…
이런 것들을 체계화하지 않으면 금방 탈이 난다.
여유는 ‘환경’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
시골살이는 여유롭지 않다.
풍경은 고요하지만, 삶은 고단하다.
할 일은 끝이 없고, 변수가 많으며,
누군가는 항상 나를 찾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하고 싶다.
시골이 준 가장 큰 여유는 ‘삶을 통제한다는 감각’이었다.
도시에서는 빠르지만 내가 내 시간을 결정하지 못했다.
시골은 바쁘지만 내가 하루를 설계하고, 끝낸다.
이 차이가 크다.
그래서 시골살이는 여유롭진 않지만
가짜 바쁨 속에 사는 도시보다 훨씬 진짜 같다.
그리고 그 진짜 같은 하루를
하나하나 내가 만들어가는 그 감각이
이 모든 바쁨을 버티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