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질문
도시에서의 삶이 고단하게 느껴질수록,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시골살이’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아침 햇살이 들이치는 창가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마당에서는 텃밭에 물을 주며, 밤이면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는 삶. 인터넷과 영상 콘텐츠 속 시골살이는 언제나 아름답고 평화롭게 묘사된다. 필자 또한 그런 장면에 매료되어, 더는 지하철 소음과 빽빽한 빌딩 숲 속에서 살 수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충청도 깊은 시골 마을로 귀촌을 결정했다. 처음엔 모두가 나를 부러워했다. “좋겠다, 시골에서 여유롭게 살 수 있어서.” 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 ‘여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골살이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방식’ 전체를 바꾸는 결정이다. 이 글은 귀촌 후 1년 이상을 실제로 살아보며 몸으로 겪은 시골살이의 현실을 담고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누군가가 시골로 향하기 전에 반드시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으면 한다. “나는 불편함과 고립, 그리고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낭만은 결국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금세 무너진다. 시골은 낭만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더 가까이에서 들이댄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준비가 된 사람만이 진짜 시골살이를 할 수 있다.
시골이 주는 불편함, 그 끝은 ‘불편에 익숙해지는 삶’
시골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불편함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다. 내가 처음 정착한 마을에는 편의점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마트는 차로 30분 거리였고, 배달 앱은 설치해도 의미가 없었다. 도시에서는 새벽 2시에도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저녁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다. 버스는 하루 두 번, 그것도 평일에만 운행되었고, 택시는 부르면 오긴 했지만 기본요금만 7,000원이 넘었다. 병원은 읍내 보건지소가 유일했고, 대형 병원은 1시간 거리의 시외 도시까지 가야 했다.
겨울에는 수도가 얼어붙고, 보일러는 자주 꺼졌다. 정전은 생각보다 잦았고, 비가 많이 오면 마을 전체가 고립되기도 했다. 눈이 오는 날에는 마당 눈부터 치우고, 지붕에 쌓인 눈까지 내려야 했다. 도시에서 당연했던 많은 것들이 여기서는 ‘노력의 결과’였다. 필자는 수도가 얼었을 때,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설거지를 하고, 샤워 대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야 했다. 처음에는 이런 생활이 고역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차 ‘불편함을 해석하는 감각’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불편함은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것이다. 시골살이란 결국, 이곳의 규칙에 적응하며 내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도시의 속도와 질서에 익숙해진 사람일수록 초반의 충격은 크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이겨낸 뒤에 찾아오는 감정은 ‘해방감’에 가깝다. 모든 것이 계획되지 않은 환경에서, 나는 더 유연해졌고 더 단단해졌다.
자연과의 공존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는 매일의 전투가 있다
시골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단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이 언제나 우리에게 우호적이라고 착각한다. 실제로 자연은 매 순간 우리를 시험한다. 봄에는 마당에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하루만 방심해도 잡초가 텃밭을 삼키고, 비가 온 다음 날이면 삽과 괭이를 들고 흙을 다시 정리해야 했다. 여름은 더 고통스러웠다. 모기는 물론이고 진드기, 뱀, 벌, 심지어 멧돼지가 밤마다 울타리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장마철에는 하수구가 막히고, 빗물이 마당을 덮었다. 집 지붕에서 물이 새어 방바닥이 젖는 날도 있었다. 겨울엔 눈이 마당과 지붕 위를 덮었고, 보일러는 장작을 수시로 보충하지 않으면 금세 식어버렸다. 도시에서라면 간단히 ‘AS 기사’를 부르면 끝날 일이 이곳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된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다. 마당에 고라니가 침입해 농작물을 밟고 갔을 때, 나는 밤새 울타리를 다시 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주는 보상은 컸다. 아침마다 고요한 바람 소리로 눈을 뜨고, 직접 수확한 상추로 밥을 먹는 기쁨은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마당에서 쑥을 캐어 쑥국을 끓이고, 감자를 삶아 이웃과 나누는 삶. 그 모든 과정은 불편함 속에서도 인간 본연의 생활에 가까워지는 여정이었다. 시골살이란 결국 ‘노력한 만큼 자연이 응답해주는 삶’이었다.
시골살이에서 관계의 밀도는 높고, 사생활의 경계는 없다
시골살이에서 가장 의외였던 부분은 인간관계였다. 도시는 익명성이 보장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로 살아도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내가 이사 온 첫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를 궁금해했고, 내가 누군지 파악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인사를 돌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음 몇 달은 마을 모임에도 자연스럽게 끼지 못했다.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소외되었고, 마을회관 청소, 제사 음식 만들기, 논두렁 풀 베기 같은 일들에 빠지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겨졌다. 도시에서는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존중받지만, 시골은 철저히 공동체 중심이다. 누군가가 아프면 국을 끓여 가져가고, 감을 따면 이웃과 나눠야 하며, 마을 이장은 언제든 집에 들어와 커피 한 잔을 요구할 수 있다. 필자에게는 이런 문화가 처음엔 답답하고 피곤하게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따뜻하게 다가왔다.
시골의 관계는 거리감이 없고, 대신 정이 있다. 불편함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인간적인 연결이 있었다. 시골에서는 물질보다 사람이 더 큰 자산이다. 무언가 필요할 때 ‘전화번호’보다 ‘이웃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삶. 이 방식은 도시와 다르지만, 때로는 훨씬 더 따뜻한 방식이었다. 결국 시골살이는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