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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33편 : 시골살이와 자동차: 이동의 자유, 그리고 고립

by eoil0023 2025. 7. 10.

시골로 내려오고 처음 몇 주간은 대중교통으로도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시내버스가 있긴 했고, 읍내로 나가는 차편도 하루 몇 번씩은 있었으며, 걸어서 갈 수 있는 마트가 한 곳쯤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달랐다. 버스는 하루 몇 번밖에 없었고, 배차 간격이 두세 시간이 넘는 건 기본이었으며, 정류장까지 가는 길도 멀고 불편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이 동네에선 차 없으면 사람 취급도 못 받아”라는 말을 했을 땐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마트에 가려면 왕복 1시간, 병원에 가려면 예약 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발해야 했고, 갑작스러운 약국 방문이나 식료품 보충도 모두 차량 없이는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했다. 그제야 나는 이곳에서 자동차가 ‘옵션’이 아니라 ‘생존 도구’라 차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골살이 현실 : 시골살이와 자동차: 이동의 자유, 그리고 고립

차량이 곧 삶의 반경이 되는 곳

도시에서는 지하철이나 버스 하나로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심지어 택시나 배달 앱도 언제든 이용 가능했다. 하지만 시골은 다르다. 차가 없다는 건 이동할 수 있는 반경이 극도로 제한된다는 의미였고, 이동의 자유가 사라진다는 건 곧 사회적 고립의 시작이기도 했다. 나는 시골에서 ‘이동 불능 상태’가 감정적인 무력감과 얼마나 깊게 연결되는지를 직접 체험했다. 눈이 많이 왔던 어느 날, 차를 끌고 나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이틀 정도 집에 머물렀는데, 그동안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고, 필요한 물건도 사지 못했고, 단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이동하지 못한다는 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다. 나의 삶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었고, 이곳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편한 일인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됐다. 자동차는 단지 교통수단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였고, 내가 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이자 도구였다.

갑자기 멈추는 순간, 고립이 시작된다

한 번은 차량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었는데, 시골에서는 바로 정비소를 부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카센터는 25km 떨어진 곳에 있었고, 견인 서비스는 몇 시간 뒤에나 도착 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날은 읍내 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었고, 약도 떨어졌던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병원 예약은 취소했고, 대신 이웃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약만 부탁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물며 이틀간 고립감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도시였다면 ‘불편함’ 정도로 지나칠 수 있었겠지만, 시골에서는 차가 멈춘다는 것이 곧 나의 이동, 연결, 생존 루트를 잃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차량 점검에 예민해졌고, 출발 전에는 항상 타이어 공기압과 엔진 소리를 체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일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시골살이에서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생활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이었다.

자동차가 주는 자유와 스트레스는 항상 동시에 존재한다

처음에 자동차를 갖게 되었을 땐 자유를 실껏 느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시간에 출발할 수 있으며, 물건도 편하게 실어 나를 수 있다는 건 도시에서보다 훨씬 큰 해방감이었다. 마트에 들러 마음껏 식료품을 살 수 있었고, 농기구나 장작도 어렵지 않게 옮길 수 있었으며, 갑자기 필요한 생필품도 읍내까지 금방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유는 곧 책임이기도 했다. 주유비, 보험료, 정기 정비, 갑작스런 고장에 대한 대비까지 모든 게 한 사람의 몫으로 떨어졌다. 도시에선 자동차 없이도 살 수 있었지만, 여기선 차가 없으면 생활이 멈췄고, 멈춘다는 건 곧 '뒤처짐'이 아니라 '단절'이었다. 차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경제력과 관리 능력이 필수였고, 그 둘 중 하나라도 흔들리면 고립이 시작되었다. 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짐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차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라는 말의 진실

시골에서는 ‘차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 말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우체국, 병원, 동사무소, 은행, 심지어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파는 곳조차 걸어갈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네 안에서는 가까워 보여도 도로 사정이나 지형 때문에 도보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한 곳도 많고, 겨울철에는 눈과 빙판으로 인해 차량 외엔 이동 수단이 거의 사라진다. 특히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차량은 ‘수단’이 아니라 ‘구조선’이다. 내가 차를 몰 수 없거나 차량이 없는 경우, 단순히 불편한 게 아니라 대응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 사실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하면 차량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차가 고장이라도 나는 날엔 불안이 곧 공포로 바뀌게 된다. 도시에서 자동차는 선택이지만 시골에서는 생존이다. 그게 현실이다.

나이 들수록 커지는 자동차 의존의 이면

귀촌 초반에는 차량 운전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2년이 지나고 나이가 한 살씩 더해질수록 문득 걱정이 된다. ‘10년 뒤에도 내가 이 길을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을까’, ‘눈 오는 날 지금처럼 대응할 수 있을까’, ‘시력과 반사 신경이 떨어져도 차량이 꼭 필요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단지 추측이 아니라 현실적 계획의 일부가 된다. 이미 마을 어르신들 중 일부는 더 이상 운전을 하지 못해 자녀들에게 모든 걸 의존하고 있고, 어떤 분은 매번 이웃에게 읍내 갈 때 함께 태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방식은 오래갈 수 없고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도 아니다. 나는 지금부터 차량 의존도를 어떻게 낮출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고, 그 대안이 사실상 많지 않다는 점에서 또 다른 막막함을 느낀다. 자동차가 필요한 삶은 곧 ‘운전 가능한 능력’이 전제된 삶이고, 그 능력이 줄어들면 나는 이 구조 안에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차량을 중심으로 재편된 삶의 리듬

시골에서의 하루는 차를 기준으로만 짜여진다. 어떤 일을 언제 할 수 있는지는 차량의 이동 가능 시간에 따라 결정되고, 농자재를 구입하거나 외출을 계획하는 것도 차량 유지 상태를 체크한 후에야 가능하다. 장날에 맞춰 일정을 짜야 하고, 병원 진료 일정도 차량 동선과 맞아야 하며, 눈이 오는 날이나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모든 계획이 자동으로 취소된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차량이 멀쩡히 있는 상태에서도 ‘만약 내일 시동이 안 걸리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삶이 차량의 컨디션에 의해 움직이게 되었다. 어떤 날은 차가 문제가 없어도 정비소에 들러 점검을 받고 오기도 했고, 단순히 안심하고 싶어서 주기적인 교체를 서두르기도 했다. 시골에서는 차량의 상태가 곧 내 생활의 안정성과 연결되며, 그 리듬 속에서 나는 점점 차량이라는 도구와 일종의 공존 관계를 맺게 된다.

나는 지금 차량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는 시골에서 차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그에 따라 내 생활 방식을 바꾸고 있다. 주유소를 지나칠 때마다 기름 게이지를 확인하고, 타이어 마모도를 체크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차량 내 응급키트와 휴대용 점프 스타터를 챙긴다. 누군가는 이것을 지나친 걱정이라 할 수 있지만 시골에서 혼자 산다는 건 그만큼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고, 차는 그것을 위한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차는 이동을 더 편하게 해주는 도구였지만 시골에서 차는 생활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나는 이제 차를 고마워하고, 동시에 그것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게 되었다. 차가 없다면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수 없고, 그 불안이 있기에 나는 더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