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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31편 : 시골에서 ‘내 집 마련’이란 무엇인가

by eoil0023 2025. 7. 8.

도시에서 집을 가진다는 건 곧 자산의 시작이자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일이다. 전세가 아닌 자가로 산다는 것은 월세 스트레스에서 벗어난다는 안도감뿐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신분 상승의 출발선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일단 도시에서처럼 로드맵이 명확하지 않다. 정해진 분양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깔끔하게 정돈된 정보가 모여 있는 플랫폼도 드물다. 대부분 중고차처럼 지역 부동산이나 마을 사람들 간 입소문에 의존해야 하며, 그 집의 상태도, 땅의 성격도, 구조도 매우 제각각이다. 나는 도시에서 20년을 살아오면서 ‘부동산’이란 단어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골에서 집을 사려 하자 완전히 다른 언어와 질서가 펼쳐졌고, 나는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다시 하나씩 배워야 했다.

시골살이 현실 : 시골에서의 내집 마련이란

 

첫 집을 찾아다녔던 그 막막한 여정의 시작

귀촌을 결심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살 집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서울에 있는 동안 부동산 앱을 뒤지고 유튜브를 찾아보며 ‘시골 집 구하기’ 콘텐츠를 수십 개 넘게 봤고, 대부분이 노후된 한옥을 어떻게 고쳐 살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처음엔 나도 낡은 시골 집 하나 사서 천천히 고쳐가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막상 현장에 가보면 사진과 전혀 다른 상태의 집이 태반이었고, 겉보기엔 괜찮은 줄 알았던 집이 수도관이 터져 있거나 보일러가 고장 났거나, 지붕에서 물이 새거나 심지어 도로가 없는 외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도 앱에서 확인한 거리와 실제 체감 거리는 전혀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고, 읍내에서 10분 거리라는 말이 실제로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집들을 볼 때마다 ‘나는 과연 여기에 정착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집을 보러 다니는 하루하루는 설렘보다 피로와 걱정이 더 컸다.

농가주택이라는 말에 감춰진 현실의 무게

시골에서 흔히 나오는 말 중 하나가 ‘농가주택’이다. 겉으로 보기엔 예스러운 정취가 있고, 옛 한옥의 멋이 살아 있는 집도 종종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 대부분 30년, 40년 이상 된 집들이고, 보수가 안 된 곳이 많으며, 주방과 화장실은 최소한의 기능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단열이 되지 않아 겨울에는 냉장고보다 더 추운 방 안에서 전기장판 하나에 의존해야 하고, 여름에는 창문 하나로 바람을 잡기 어려운 곳이 허다하다. 처음엔 낭만적으로 보이던 시골 집의 모습이,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의 부담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 무게를 몸으로 실감하며 점점 기대치를 낮춰야 했다. 특히 배수와 전기, 수도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고, 도시에서 너무나 당연했던 시스템들이 여기선 하나씩 직접 확인하고 점검해야 할 항목으로 바뀌었다. ‘내 집을 가진다’는 감동보다,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리모델링이라는 단어가 갖는 양면성

결국 내가 선택한 집은 오래된 농가주택이었다. 위치가 좋았고, 주변 마을 사람들도 괜찮다는 평가가 있었고, 구조가 단순해서 손보기에 적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쳐 쓰면 되지’라는 생각은 정말 도시식 발상이었다. 리모델링은 생각보다 많은 예산이 들었고, 그것도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터지면서 수시로 비용이 증가했다. 전선은 낡아서 전기공사를 다시 해야 했고, 하수도는 막혀 있었고, 지붕도 전체를 들어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견적이 계속 올라가자 처음엔 불안했고 나중엔 체념하게 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과정이 끝나고 나자 그 집이 정말 내 집처럼 느껴졌다. 손으로 고치고, 눈으로 확인하고, 발로 뛰며 수리한 그 과정이 집을 ‘소유’하는 감각이 아니라 집과 ‘연결’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의 시간을 바꿔준 공간은 그렇게 완성되었고, 비로소 나는 시골에서 ‘내 집’을 얻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등기보다 중요한 건 삶의 자리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법적으로 집을 사는 일은 간단한 일이다. 계약서 작성, 등기 이전, 세금 납부까지 몇 주면 끝나는 절차다. 그러나 진짜 ‘내 집’이 되기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서류상으로는 이미 이 집의 주인이었지만, 마음으로는 한참 후에야 이 집이 내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마당에서 감자를 심고, 마을 이장을 따라 공동작업에 참여하고, 쓰레기 버리는 요령을 익히고, 마을회관에서 이웃과 인사 나누는 시간을 거쳐야만 가능했다. 내 이름이 도로명 주소에 등록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이 마을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진짜 ‘정착’이었다. 등기가 있다고 해서 이웃이 인사해주는 건 아니고, 주택이 있다고 해서 삶이 자리를 잡는 것도 아니다. 내 집을 갖는다는 건 단순히 공간의 소유가 아니라 관계와 일상의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집을 사는 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집을 산 후에도 끝난게 아니라 시작이였다. 정원에는 풀이 자라고, 지붕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손을 봐야 하고, 수도 계량기 점검이나 보일러 관리 같은 일들은 정기적으로 체크하지 않으면 문제를 키우게 된다. 도시에서는 고장나면 관리실을 부르면 됐지만, 여기선 그 모든 것을 내가 판단하고 처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책임’을 가진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사실이었다.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돌보고 챙기고 관심을 주지 않으면 금방 문제가 생기는 게 집이었다. 나는 이 집을 통해 돌봄의 의미를 배웠고, 그것은 단순히 공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일상에 대한 태도까지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돌보지 않는 관계가 멀어지듯, 돌보지 않는 집은 금세 낯설어졌고, 다시 다가가야 내 것이 되었다.

나는 이 집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이제 이 집에 산 지도 2년이 넘었다. 처음 이사했을 때는 밤마다 낯선 소리에 놀라고, 비가 오면 천장이 새는 건 아닐까 불안해했으며, 겨울마다 수도가 얼까 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소리들이 익숙해졌고, 비가 오는 날엔 창문을 닫는 순서까지 몸에 배었고, 겨울이면 미리 물을 틀어놓고 잠드는 여유가 생겼다. 이 집은 내게 안정감을 줬고, 동시에 나를 단련시켰으며, 무엇보다 삶의 중심이 되는 거점이 되어 주는 곳이다. 어디서든 잠시 머무를 수는 있지만, 진짜 ‘살아간다’는 감각은 이 집을 통해 완성되었다. 도시의 집은 기능적 공간이었지만, 이곳의 집은 감정의 기둥이 되었다. 지친 날엔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 바람을 맞고, 기쁜 날엔 화분을 하나 더 들여놓으며 공간을 더한다. 이런 감정은 오직 ‘내 집’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골에서 집을 가진다는 것의 진짜 의미

결국 시골에서 내 집을 가진다는 것은 ‘공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쁘게 꾸민 전원주택이나 인기 유튜브 영상 속의 한 장면이 아니라, 물을 퍼 나르고, 창틀을 고치고, 겨울에 장작을 준비하는 그 지난한 과정을 감당하고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버겁고 힘들지만, 동시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삶을 만들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 집을 통해 그걸 배웠고, 다시 집을 사야 한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시골의 오래된 집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감정, 그리고 관계들이 오롯이 쌓인 살아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