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골로 내려올 때는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다. 도시의 피로가 가득 쌓여 있었고,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는 강박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디든 좋았고, 서울만 아니라면 그곳이 산이든 바다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작정 내려온 시골,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선했고 익숙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내 삶이 마치 새로운 영화처럼 펼쳐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그건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는 현실이었다. 고요했지만 외로웠고, 한가했지만 할 일이 넘쳤으며, 자연은 아름다웠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많은 것들을 배워야 했다. 도시에서 쓰던 언어와 몸짓은 여기서 통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배우고 또 익히며 조금씩 달라진 사람이 되어갔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 지금 나는 묻고 있다. 다시 시작하더라도, 나는 과연 시골을 선택할까.
처음의 기대와 지금의 감정은 다르다
도시에서 시골을 바라볼 때 가졌던 기대는 막연했다. 조용한 아침, 여유로운 삶, 사람 냄새 나는 이웃들, 적당한 노동과 정직한 수입, 이 모든 게 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틀린 건 아니었다. 시골은 실제로 조용했고,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인사도 있었고, 직접 심은 작물에서 수확을 얻는 기쁨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했다. 현실 속의 시골살이는 단순히 낭만적인 풍경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노동과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점점 줄어드는 관계의 밀도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존의 고민이었다. 여유보다는 버팀이 더 필요했고, 사람 냄새는 때로 간섭으로 다가왔으며, 수입은 정직했지만 안정적이진 않았다. 그래서 처음 가졌던 기대는 이제 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다. 낭만을 기대하기보다는 이곳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중심에 두게 되었고, 그 감정은 나를 한층 더 현실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나 자신과 자주 마주쳤다
도시에서는 일에 쫓기고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도 정작 내 자신과는 마주하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게 급했고, 평가와 경쟁 사이에서 항상 비교당하고 있다는 감각 속에 살았다. 반면 시골에서는 외부의 시선이 거의 사라진다. 누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 누가 얼마를 벌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적다. 대신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견디기 힘들어하는지를 똑바로 마주하게 된다. 나는 시골에 와서 처음으로 고요 속에서 진짜 내 생각을 들었고,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 속에서 내 감정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때로는 그게 불편했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이곳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이다. 나는 이제 내 기분을 더 잘 알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시골은 내게 거울이 되었고, 나는 그 거울을 외면하지 않고 서서히 바라보는 법을 배워왔다.
손해 보는 삶에서 충분한 삶으로
도시에선 늘 효율을 따졌다. 시간 대비 수익, 노력 대비 성과, 관계에서 얻는 정보, 어디를 가든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을지를 계산했다. 시골에선 그 공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한 시간이나 걸려 밭을 정리하고 나면 남는 건 땀과 피로이고, 수익은 고사하고 농작물이 비라도 맞으면 한순간에 무너진다. 이웃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해도 돌아오는 건 실질적 이득보다는 인사 한마디, 수박 몇 통, 고구마 몇 상자가 전부일 때가 많다. 그런 삶은 처음엔 손해처럼 느껴졌다. 도시에서는 이렇게 일했으면 뭔가 성과가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무의식적으로 지금 내 삶이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이익이 없어도 괜찮고, 수익이 없어도 가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숫자에 담기지 않는 관계와 계절의 흐름, 햇살의 밀도 같은 것들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손해를 보며 사는 삶이 아니라, 충분히 채워지는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그 어떤 계산보다 지금의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시골살이는 잘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일이다. 처음에는 외로움이 두려웠고,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남겨지는 밤이 무서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두려움은 다른 방식으로 변해갔다. 예기치 않은 병, 갑작스런 고장, 계절의 변화에 따른 농작물의 손실, 경제적인 불안, 관계의 단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들이 나를 흔들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이 사라진 적은 없다. 다만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않고, 그 불안 속에서도 하루하루의 루틴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시골에서의 삶이다. 두려움은 도시에도 존재하지만, 시골은 그 두려움을 더 빨리 더 자주 직면하게 만든다. 내가 어떤 두려움에 취약한지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더 유연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한 사람들의 뒷모습
시골살이 2년 동안 나는 많은 귀촌자들을 봤다. 어떤 이는 몇 달 만에 다시 도시로 돌아갔고, 어떤 이는 1년쯤 버티다가 결국 포기했다. 반면 꾸준히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분들도 있었다. 도시를 떠나온 이유는 사람마다 달랐고, 돌아가는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돌아간 사람들의 말은 대부분 비슷했다. 외로워서, 경제적으로 버거워서, 관계가 어려워서.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말도 비슷했다. 힘들지만 지금이 좋다, 아직 갈 수 없고, 여기가 마음이 편하다. 이 두 말 사이에 나는 있었다. 떠날 수 없지만, 완전히 머물 자신도 없는 중간자. 그런 내 마음을 인정하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람은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삶은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방향이고, 그 방향이 지금 나에게 맞는지를 계속 확인하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그 과정 안에 있는 사람이고,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요즘 나는 자주, 많이 걷는다. 특별한 목적 없이, 정해진 길도 없이,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 그 속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이 길의 끝엔 무엇이 있을지, 지금의 삶을 더 오래 이어갈 수 있을지. 그러나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내 삶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믿는다. 길은 한 번에 정해지지 않고, 걷는 동안 조금씩 생긴다. 시골살이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방향만 있을 뿐 구체적인 경로는 없었고, 하나씩 배워가며 길을 만들고 있다. 지금 이 길이 어디로 향하든, 나는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언젠가 이 길이 막히거나, 멈추게 되더라도 나는 내 발로 걸었고, 내 마음으로 선택한 길을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시작하더라도 나는 이곳을 선택할 것이다
이제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시골을 선택할까. 지금의 모든 경험을 알고도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시 시작해도 나는 시골을 선택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시골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었고, 그 질문 안에서 나는 수없이 흔들리고 고민하고 또 결정했다. 도시에서라면 애써 외면했을 감정들을 마주했고, 도시에서 가졌던 강박들을 내려놓았고, 무엇보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의 삶이 완벽하진 않지만, 그 불완전함을 안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커다란 변화였다. 그래서 다시 시작해도 나는 여전히 시골을 선택할 것이다. 그건 단순한 장소의 선택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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