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온 지 2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큰 고민없이 왔다. 오직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이곳을 선택했고, 당장의 피로를 벗어나기 위한 충동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곳에서의 삶을 조금씩 사랑하게 되었고, 동시에 이곳이 나의 종착지일 수 있을까에 대해 자주 고민하게 되었다. 시골살이는 시작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계속 살아가는 건 훨씬 더 큰 결단이 필요하다. 처음엔 자연이 좋았고, 한적한 삶이 마음에 들었다. 시계에 쫓기지 않는 시간, 농한기와 농번기를 오가며 느끼는 계절의 리듬, 밤마다 쏟아지는 별빛은 도시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질문이 마음 한구석에 스며들었다. 나는 정말 이곳에서 늙어갈 수 있을까. 나의 마지막은 이 마을에서 맞이하게 될까. 아니면 언젠가는 다시 떠나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나는 이 삶의 끝을 자꾸만 상상하게 되었다.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고 믿었는데 흔들리는 나를 발견한다
정착이라는 말은 익숙함을 넘어서는 어떤 단단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마을에 주소를 옮겼고, 텃밭을 만들었고, 계절마다 해야 할 일들을 기억하게 되었고, 이웃들과의 인사도 자연스러워졌고, 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내 이름을 알고 인사를 건넨다. 겉으로 보면 나는 이 마을의 일부가 되었고, 이곳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 달랐다. 겉으로는 뿌리를 내린 것 같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떠날 가능성을 접지 못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서울을 검색하고 있고, 도시에 사는 친구들의 이야기에서 감정을 느끼며, 나도 언젠가는 다시 도시의 삶을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지우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정말 이곳에서 평생 살 수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잠시 멈춘 사람일까.
몸은 적응했지만 마음은 아직도 길 위에 있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몸은 이 시골에 적응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잡초를 뽑는 손길도 서툴지 않으며, 무거운 고추 자루를 들고 움직이는 일도 예전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밭에서 흙을 만지면 마음이 가라앉고, 손수 담근 장아찌를 먹으며 계절을 체감하는 감각은 이젠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나는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막연한 감정을 지닌 채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여기에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짐을 싸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물리적인 불안이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불안이다. 도시에서의 나, 시골에서의 나, 그 중 어디에 더 가까운지 모르겠다는 감정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이 온전한 나인지, 아니면 잠시 머무는 사람인지를 스스로 정의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떠날 이유는 많지 않지만, 완전히 남을 이유도 충분하지 않다
이 마을이 싫어진 건 아니다. 오히려 이젠 고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를 회복시켜준 공간이고,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시간들을 안겨준 곳이기에 애정도 크다. 마을 사람들과의 거리감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혼자만의 리듬도 찾았으며, 소소한 수익을 만들어내는 일도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떠나게 될 수도 있다’는 전제를 품고 있다. 마을에서 젊은 인구는 계속 줄고 있고, 내가 늙었을 때 이웃 중 몇 명이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고, 의료 시스템은 여전히 불안하고, 결정적으로 나의 삶을 계속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배우고 싶은 것이 생겨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도,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 이곳의 한계다. 정착의 조건은 단지 익숙함이나 생계의 안정만이 아니라,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확장성과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에서 시골살이는 때로 벽처럼 느껴진다.
영원히 머물기엔 너무 느리고, 다시 떠나기엔 너무 많이 내려놨다
시골살이는 여백의 삶이다. 도시에서 많은 것을 움켜쥐려 애썼다면, 여기서는 하나씩 내려놓으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내려놓은 만큼 다시 움켜쥐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나는 이제 도시에서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도시의 흐름은 너무 빨랐고, 지금은 그 속도를 내 몸이 잊어버린 상태다. 반면 시골은 느리다. 너무 느려서 가끔은 지루하고,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 속도감은 때론 평화이지만 때론 정체로도 다가온다. 그래서 이 삶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을까 자문하면 망설이게 된다. 다시 도시로 돌아갈 용기는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상태로 평생을 살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시골살이의 끝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은 결국 내가 어디까지 이 느린 리듬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곳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전제 속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나는 요즘 오늘 하루에 더 집중하려 한다. 먼 미래를 자꾸 상상하면 오히려 지금의 삶이 불안해지고, 비교와 고민으로 인해 오늘의 시간마저 흐릿해질 때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얼마나 더 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하루의 리듬을 정직하게 살아내는 것이 결국 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믿게 되었다. 텃밭에서 자라는 작물을 보며, 이웃과 마주치면 인사하며, 오늘 날씨에 맞춰 삶을 맞추는 방식이 어쩌면 내가 그토록 찾던 ‘살아 있음’의 감각인지도 모른다. 떠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현재를 더 소중하게 만들고, 그 현재를 지켜나가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다.
삶의 종착지는 장소가 아니라 방향이다
시골에서의 삶이 끝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시작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내가 어떤 방향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시골살이는 내게 아주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고, 그 질문을 통해 나는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어디에 있든, 어떤 삶을 살든, 나는 결국 내 마음속 기준을 따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시골이든 도시든,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삶의 결을 갖추고 있는가이다. 이제 나는 시골이 전부도 아니고, 도시가 전부도 아니라는 걸 안다.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고 있는 중이고, 그 균형이 무너질 때 나는 또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그 선택이 잘못되었든 옳든, 중요한 건 내가 계속해서 나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일 것이다.
지금 이 삶의 끝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아직 이 삶의 끝을 보지 못했다. 지금의 삶이 끝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이 시간들은 분명 나를 성장시켰고, 나를 다시 구성하게 만들었고, 내 삶의 결을 조금 더 단단하게 해주었다. 시골살이의 끝은 어쩌면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몇 달 살고 떠났고, 또 누군가는 10년을 살다가도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어떤 이는 시골에서 죽을 때까지 살겠다고 말하지만, 또 어떤 이는 계속 고민하며 일 년씩 연장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이 마을에 살고 있고, 내일도 아마 이 길을 걸을 것이고, 모레도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 마음은 매일 조금씩 변하고 있고, 나는 그 변화 속에서 다시 삶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이 변화가 끝나는 날이 진짜 시골살이의 끝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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