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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26편 : 나는 왜 아직 ‘서울’을 검색하는가

by eoil0023 2025. 7. 6.

서울을 떠나 시골로 내려온 것은 단순한 감정적 충동이나 로망 때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 선택에는 도시의 구조 안에서 버티는 것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효율적이지만 버겁고, 기회가 넘치지만 항상 불안했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오히려 더 많이 통제당하는 느낌이 컸다. 그래서 나는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다시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시골살이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고, 조금 불편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느리고 고요한 삶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도 도시가 자꾸 떠올랐다. 별다른 이유 없이 스마트폰 검색창에 ‘서울’이라는 단어를 써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 나는 의아함과 함께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스스로 선택한 이 시골살이 안에서 나는 왜 여전히 서울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시골살이 중에도 도시가 떠오르는 순간들

시골살이를 하다 보면 서울이 떠오르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늦은 밤 갑자기 배가 고파질 때, 예전 같으면 배달 앱 하나로 30분 만에 국밥을 시켜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읍내까지 나가는 차를 몰고도 가게 문이 닫혀 있거나,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현실을 마주할 때 도시의 편리함이 그리워진다. 병원에 갈 일이 생겨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는 지하철 타고 15분이면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이곳에선 진료받을 수 있는 곳까지 차로 40분을 달려야 하고, 그마저도 예약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마음이 답답해져서 산책이라도 하고 싶을 때, 시골의 풍경은 평온하지만 반복되는 들판과 밭 사이에서 걷다 보면 도시의 다양한 거리, 서점과 카페, 골목의 풍경이 그리워진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이웃들은 모두 좋은 분들이지만, 젊은 세대는 드물고 대화 주제도 한정되어 있다. 다양한 생각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의 마주침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외로움으로 다가오고, 그럴 때면 서울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익명성과 다양성이 떠오른다.

도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

서울을 검색하는 이유는 단순히 장소가 그리워서가 아니었다. 도시라는 공간 안에서 내가 가졌던 리듬과 감각, 나 자신이 익숙하게 느끼던 삶의 방식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서울은 나에게 여러 자극을 주는 공간이었다. 어디를 가든 새로운 간판과 정보가 넘쳐났고, 카페 하나를 들어가도 전시를 하고 있거나 책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경험이 가능했다. 반면 시골은 조용하고 단순하며 한결같다. 그 속에서 안정과 평화를 얻는 대신 자극과 속도, 그리고 다양한 피드백이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때때로 내가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울을 검색하는 순간은 내가 익숙했던 감각을 되찾고 싶은 심리의 표현이었고, 나라는 사람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도시에서 나는 빠른 문제 해결자였고, 일정 관리에 능숙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필요한 역할을 해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그런 능력들이 오히려 과하거나 무뚝뚝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나는 여기서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래서 서울을 떠올리는 건 단순한 장소적 그리움이 아니라, 내 자존감과 존재의 증명을 되찾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시도일 수 있었다.

도시와 비교하며 흔들리는 마음의 실체

비교는 언제나 문제를 야기한다. 시골살이를 하며 가장 힘든 점은 외부 환경보다도, 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비교심리였다. 서울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시골에서는 특별한 일이 되고, 그 반대로 시골에서는 당연한 것이 도시 사람에겐 생소한 일이 된다. 예컨대 도시에선 병원 예약이 당연하고, 인터넷 강의나 학원도 넘쳐나며,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이런 것들이 모두 ‘구해야 하는 것’이 되고, 때로는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래서 도시의 시스템을 생각할수록 시골살이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그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내가 이곳에 맞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 서울을 검색한다. 그리고 도시의 삶을 마치 상실된 기회처럼 바라보게 되는 순간, 시골에서의 하루는 유독 더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감정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더 분명해진 사실은,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실제 서울이 아니라, 서울에 살던 시절의 나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서울을 떠올린다고 해서 귀촌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이런 감정을 가진다고 해서 시골살이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그리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떠나온 곳을 떠올리는 건 그만큼 오래 살아왔고 익숙한 구조에 몸이 배어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이다. 나는 서울을 떠나왔지만, 서울이 내 안에서 사라진 건 아니었다. 도시는 나의 과거였고, 그 안에서 형성된 나의 삶의 방식은 여전히 내 일부였다. 그래서 도시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 그리움이 현재를 흔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 감정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움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돌아보고 균형을 잡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면, 서울을 떠올리는 일조차도 시골살이의 한 과정이 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서울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생각이 끝난 후 다시 내 마당을 바라보며 흙냄새를 맡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 돌리는 시간이 지금은 더 많아졌다. 도시가 주던 자극이 필요할 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직접 커피를 내리며 작은 일상을 채우는 방법을 배웠다. 그렇게 조금씩, 도시의 감각을 시골에서 구현해가면서 내 안의 균형은 서서히 회복되었다.

서울을 그리워하지 않으려 하기보다, 그 감정을 잘 다루는 법

서울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무시한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고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없애려는 대신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 서울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도시에는 빠른 시스템과 자극적인 콘텐츠, 효율적인 구조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경쟁, 소음, 피로, 고립감도 있었다. 그 양면을 함께 바라보면, 감정은 조금 더 냉정하게 정리된다. 또, 도시에서 즐기던 일부 요소를 시골에 가져오려 노력했다. 책을 사서 방 한 켠에 작은 서재를 만들고,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며 커피를 내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즐겼던 감각을 내 방식으로 시골 안에 녹이니 그리움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나는 서울을 정기적으로 다녀오는 계획도 세웠다. 분기별로 친구를 만나거나 도서관에 들르며 감각을 유지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면 오히려 더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서울은 여전히 내 삶의 일부지만, 나는 지금 이 마을에서 내 리듬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서울을 검색하는 일도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오늘도 나는 서울을 검색했다. 예전 직장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 이름이 궁금해서 검색해봤고, 이어서 강북구의 한 아파트 시세를 봤다. 아주 잠깐이었다. 검색이 끝난 뒤 나는 마당에 나가 바람을 맞았고, 고추 몇 개를 따다가 그 자리에서 깨끗이 씻어 저녁 반찬으로 올렸다. 서울을 검색한 내가 부끄럽지 않았고, 오히려 내 안의 어떤 부분을 어루만진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았다. 귀촌은 단지 공간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나란히 살아가는 과정이고, 익숙한 것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나는 서울을 완전히 지우지 않았다. 그 대신 서울을 하나의 기억으로 존중하며, 지금 이 자리에서 새롭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