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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24편 : 귀촌과 부부 사이가 흔들리는 이유

by eoil0023 2025. 7. 5.

많은 사람들이 귀촌을 이야기할 때 “가족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살고 싶었다”는 말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시에서의 삶은 각박했고 늘 바쁜 일상 속에서 서로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시골에서라면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고, 마음이 편해지면 부부 관계도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귀촌을 하고 몇 달이 지나자 나는 그 믿음이 얼마나 단순하고 얕은 생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시골에서의 삶은 여유가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긴장이었다. 특히 그 긴장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시작되어, 부부 관계라는 아주 민감한 영역까지 조용히 침투했다.

 

시골살이 현실 24편 : 귀촌과 부부 사이가 흔들리는 원인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주는 정서적 충격

도시에서 살던 사람에게 시골은 언뜻 보기에는 단순하고 평화로운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내려와서 살아보면 단순한 것은 환경이지 그 안에 놓인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도시에서는 택배 하나, 쓰레기 처리 하나조차 손쉽게 해결되던 일이 시골에서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되는 것이다. 작은 일에도 시간이 배가 들고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런 환경 변화는 부부 모두에게 심리적 피로를 쌓이게 만든다. 낮에는 논밭일, 밤에는 서로 피곤해진 얼굴만 마주하게 되면서 서로에게 짜증을 내는 빈도가 점점 늘어난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일상은 로맨틱하지 않다. 우리는 그 차이를 깨닫는 데 몇 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역할 분담이 무너지며 생기는 미묘한 갈등

도시에서의 생활은 분업화가 익숙했다. 나는 직장을 다니고 배우자는 집안일을 더 많이 담당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시골로 내려오면서 우리는 모든 일을 함께해야 했다. 밭일도, 장보기도, 가구 조립도, 쓰레기 정리도 경계 없이 서로의 일이 되었다. 문제는 그 모든 일을 서로가 다 맡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일했는데 왜 당신은 아무 것도 안 해?”라는 말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 둘 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고된 노동은 우리를 피로하게 만들고, 피로는 오해를 만들었다. 귀촌은 새로운 생활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오래 쌓여 있던 감정의 균열을 더 크게 드러나게 했다.

고립된 환경 속, 외부 자극이 사라지면서 생기는 문제

도시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 다양한 문화 자극, 직장이라는 네트워크가 있었다. 그것이 때로는 부부 사이의 불필요한 감정을 분산시키는 장치가 되었다. 그러나 시골로 내려오자 하루 종일 마주하는 얼굴은 서로뿐이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좋았다. 함께 밥을 먹고, 정원을 가꾸고, 동네를 걷는 시간이 행복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관계는 숨통을 조이는 굴레처럼 바뀌었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점점 높아졌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의 실망감도 커졌다. 외부의 자극이 사라지자 부부 간에 존재했던 작은 갈등들도 증폭되기 시작했다.

각자의 귀촌 이유가 달랐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나는 자연을 좋아했고 단순한 삶을 원했다. 그러나 배우자는 시골이란 공간을 마치 내 결정에 따라온 듯한 위치로 받아들였다. 나는 ‘함께 선택한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배우자에게는 ‘어쩔 수 없이 합류한 변화’였다. 그 인식 차이는 작지만 점점 깊은 골을 만들었다. 밭일이 힘들다며 중간에 들어가는 배우자를 보며 나는 ‘성의가 없다’고 느꼈고, 배우자는 나를 보며 ‘자기만 좋아하는 일에 나를 끌어들였다’고 느꼈다. 마음속에 묻어둔 말들이 쌓이면서 서로에 대한 섭섭함은 점점 커졌다. 우리가 처음 시골을 선택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왜 귀촌을 하려는가’를 서로 깊이 나누는 일이였다.

부부 사이의 대화는 느는 게 아니라 줄어들었다

귀촌하면 대화가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도시에서는 늘 바빴기 때문에 서로 말이 부족했고 그게 갈등의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오히려 대화가 줄어들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는 착각이 생겼고, 그 착각은 오해로 이어졌다. 피곤한 몸으로 밤을 맞이하면 서로에게 말을 걸기보다 빨리 누워 자기를 선택했다. 나중엔 말하지 않는 게 편하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말이 줄어들자 감정도 줄어들었고, 감정이 줄어들자 관계는 악화되었다.

외부 시선이 만드는 미묘한 압박

시골에서는 이웃들의 시선이 항상 존재한다. 누가 아침에 일찍 나오는지, 누가 밭을 잘 가꾸는지, 부부가 함께 움직이는지 모두가 지켜본다. 우리는 그런 시선에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부럽다, 두 분 참 보기 좋아요”라는 말이 기분 좋게 들렸지만, 점점 그것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치 ‘행복한 부부’로 보여야만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고, 그 모습이 깨지지 않게 하려다 보니 집 안에서는 더 큰 스트레스를 겪고 말았다. 외부에서는 웃고, 내부에서는 말이 없어진 삶은 그 자체로 피로했다.

시골살이는 갈등을 숨기기 어렵게 만든다

도시에서는 잠깐의 갈등이 있어도 각자 회사를 가고 취미 생활을 하면서 잊히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하루 종일 한 공간에서 마주치게 된다. 화해하지 않으면 마주치는 것조차 고역이 된다. 그래서 갈등이 쌓이면 빠르게 극단으로 치닫기 쉽다. 어느 날은 말없이 하루 종일 각자의 공간에만 머물렀고, 어느 날은 작은 말 한마디로 큰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 날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왜 함께 이곳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부부가 아닌 ‘노동 파트너’가 되는 느낌

시골살이는 둘만의 로맨스보다는 ‘협업’이 우선이다. 논밭, 집 수리, 장작, 텃밭, 마을 행사까지 매일 일정이 있고 그것을 함께 처리해야 한다. 하루 종일 함께 일하고 나면 부부는 어느새 ‘노동 파트너’처럼 느껴진다. 손을 잡기보다 삽을 잡는 시간이 더 많고, 함께 웃는 시간보다 함께 작업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그렇게 정서적 교감보다 육체적 협업이 우선되면서 부부라는 본래의 관계가 흐려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연습을 해야 했다

이렇게 흔들리던 시기, 우리는 단 한 가지를 결정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솔직해지는 것만이 우리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내가 기대했던 귀촌의 환상과 배우자가 겪은 현실의 간극을 이해하려 했고, 배우자도 내 의도와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려 노력했다. 자주 대화를 나누고, 혼자 있는 시간을 주고받으며, ‘함께’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귀촌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가치는 결국 ‘서로를 진짜로 이해할 기회’였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여정, 그러나 함께 할 수 있는 이유

귀촌은 인생의 대전환이다. 혼자라면 견딜 수 있는 문제도 둘이라면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둘이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는 순간도 많아진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고, 서로 다른 이유로 이 시골에 왔다. 하지만 결국 서로를 향한 애정이 남아 있다면 이 흔들림도 언젠가는 안정이 될 수 있다. 시골살이는 부부라는 관계를 시험에 들게도 하지만, 동시에 더 단단하게 만들 기회도 준다. 중요한 건 처음의 목적이 아니라 지금 서로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는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