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시골살이의 낭만이 가장 빨리 깨지는 계절이다
처음 귀촌을 결심할 때 나는 봄날의 햇살과 가을의 들판을 떠올렸다. 겨울은 그저 ‘잠시 쉬는 계절’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시골에서 첫 겨울을 맞이하고 나서야 진짜 시골살이는 겨울에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난방이 잘 되는 아파트 안에서 계절을 가늠하지 않고 살 수 있지만 시골에서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몸으로 바로 느꺼진다. 바람은 집 틈 사이로 스며들고 물은 얼고 길은 미끄러워진다. 아침마다 물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보일러가 잘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겨울이라는 단어가 ‘생존’과 가장 가까워지는 계절이 바로 이 시골의 겨울이다.
기온보다 무서운 것은 매일 반복되는 돌발 상황이다
시골 겨울의 가장 큰 특징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다. 물이 얼지 않게 하기 위해 외부 수도에 헌 옷을 감고 비닐로 싸도 영하 15도를 넘기는 날이면 소용이 없다. 어느 날 아침엔 화장실 물이 내려가지 않았고, 또 어떤 날은 보일러실 배관이 터져 마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도시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시골에서는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눈보다 먼저 날씨 예보를 챙겨 본다. 하루라도 긴장을 늦추면 집 자체가 기능을 멈추는 일이 생길수도 있다. 그것이 시골 겨울의 현실이다.
눈은 풍경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다
도시에 살 때는 눈이 내리면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눈은 낭만이 아니라 문제다. 쌓인 눈이 차량 진입을 막고, 비닐하우스를 무너뜨리며, 지붕 위에 오랜 시간 올라앉아 무게를 만든다. 눈이 온다는 예보가 뜨면 새벽부터 일어나 도로를 살펴야 하고, 쓸 삽과 염화칼슘, 작업 장갑을 꺼내야 한다. 가장 힘든 점은 눈이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눈이 녹을 기미 없이 이어지는 한파 때는 하루 종일 눈을 치워도 다음 날 아침엔 또 처음처럼 덮여 있다. 도시에서는 관리실에서 해결해주던 일이 시골에서는 모두 내 몫이 된다. 그래서 시골살이에서 눈은 ‘자연’이 아니라 ‘생존의 위협’이다.
겨울 난방은 돈이 아니라 구조와 싸움이다
겨울철 시골집에서의 난방은 단순히 보일러를 트는 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집의 구조, 단열 상태, 바람이 들어오는 방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시골의 오래된 집은 대부분 단열이 취약하고 틈이 많다. 벽지 뒤로 바람이 드나들고 창문 틈 사이로 찬기가 흐른다. 보일러를 아무리 세게 돌려도 방 전체가 따뜻해지지 않는 날이 많다. 난로와 전기장판, 핫팩까지 총동원해야 겨우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날이 있고, 한밤중에 외풍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설치는 날도 많았다. 가장 추운 1월과 2월은 그야말로 매일이 작은 전쟁이다.
겨울철 먹거리 준비는 가을에 결정된다
겨울에 마트까지 나가는 일조차 어려운 날이 많다. 그래서 진짜 시골 사람들은 가을부터 겨울을 준비한다. 김장은 기본이고, 고구마, 감자, 무, 배추, 말린 나물, 젓갈류를 한꺼번에 저장해 둔다. 냉장고도 부족해 바깥 공간이나 다용도실, 창고에 음식물을 보관해야 하는데, 냉기가 너무 강하면 이마저도 얼어버리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 다시 재료를 옮기고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겨울에는 요리를 하기보다는 ‘음식을 잘 보관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도시에서는 언제든 배달이 가능하지만 시골에서는 하루 폭설이 내리면 이틀간 마을 입구도 막힌다. 그래서 시골의 겨울은 ‘먹을 것’도 미리 대비해야만 견딜 수 있다.
사람 만나는 일이 줄어드는 계절, 고립감이 찾아온다
눈이 쌓이고 날이 추워지면 마을 사람들도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마을회관도 문을 닫는 날이 많아지고, 산책하던 어르신들도 실내에만 머무른다. 자연스레 인간관계도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고 고립감이 깊어진다. 혼자 사는 귀촌자에게는 이 시기가 심리적으로 가장 위험한 계절이다.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고, 소소한 일상도 사라지면서 우울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나는 이 시기에 나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침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일어나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야 하지’라는 고민을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느리게 흐르면서도 매 순간 생존 본능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겨울이 주는 시간은 고요와 성찰의 기회이기도 하다
겨울은 육체적으로 혹독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가장 성찰할 수 시간이다. 농사도, 마을 행사도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봄과 여름에는 움직이느라 바빴던 몸이 겨울에는 멈추게 되고 멈춘 몸은 생각을 시작하게 만든다. 나는 겨울 동안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이 마을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생각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장작을 패며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늘어났다. 누군가에게는 이 겨울이 고통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마음의 구멍을 메우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시골의 겨울은 혼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도시에서는 춥다고 하면 난방을 하면 되고, 길이 미끄럽다고 하면 제설 작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그 모든 것이 ‘나의 선택’과 ‘나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장작을 패고 물을 확인하고 길을 치우고 옷을 껴입고 외출을 포기하는 것까지 모든 결정은 내가 해야 한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에게 겨울은 결코 가볍게 지나가지 않는다. 나는 이 겨울을 보내며 비로소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웠다.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필요한 계절이었다.
추위를 이기는 방법은 기술이 아니라 리듬을 익히는 것이다
시골의 겨울은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열재를 아무리 써도 바람이 드는 창문을 막을 수 없고, 고성능 보일러도 정전이 되면 무용지물이 된다. 결국 이 겨울을 견디는 법은 ‘기술’이 아니라 ‘습관과 리듬’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일러를 체크하고, 물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문을 열기 전 장갑과 모자를 챙기는 일. 이 모든 것이 하루의 일상이고 리듬이 된다. 익숙해질수록 겨울은 조금 덜 차갑게 느껴진다. 겨울은 나를 매일 준비시키고, 그 준비가 습관이 되면서 나는 점점 이 삶에 적응할 수 있었다.
시골에서 맞는 겨울은 타인의 존재를 더 소중하게 만든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이웃과 마을의 존재가 더 고마워진다. 눈이 많이 내린 날 누군가 조용히 내 집 앞도 함께 치워주었고, 정전이 되었을 때 옆집에서 뜨거운 물을 나눠주었다. 이웃의 존재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크게 다가온다. 함께 사는 일이 무엇인지를 절실히 느끼는 계절이 겨울이다. 도시에서는 몰랐던 ‘사람의 온기’가 시골의 추위 속에서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 겨울을 통해 공동체의 힘을 다시 보게 되었고, 내가 이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더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
겨울을 견디고 나면 마을이, 삶이 다르게 보인다
가장 힘든 계절인 겨울을 지나고 나면 마을이 조금 달라 보인다. 봄이 왔을 때 나는 단순히 꽃이 피는 것을 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꽃이 피기 위해 지난겨울 얼마나 많은 것을 견뎠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 집도, 나무도, 내 마음도 겨울을 지나면서 한 겹씩 단단해졌고 그 단단함이 이후의 계절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시골의 겨울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을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과정이었다. 나는 이 겨울을 통해 한 단계 더 나아간 삶을 살게 되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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