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을 결심했을 때 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도시에서의 삶은 늘 바쁘고 경쟁적이었으며,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삶 속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감정이 늘 따라다녔다. 그래서 자연과 가까운 삶을 택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이 단순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골살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이 하나씩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낯설고 무서웠던 감정은 우울함이었다. 소리 없는 고요함과 외로움이 천천히 나를 삼켜 들어갔고, 나는 그 감정을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놓을 수 없었다.
몸은 바쁘고 피곤한데 마음은 허전했다
시골 하루의 시작은 새벽부터였다. 가축을 돌보고, 밭일을 하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고, 때로는 혼자 집을 고치고 장작을 쪼갰다. 몸은 늘 바빴고 피곤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졌다. 도시에서 살던 시절엔 몸이 피곤하면 마음도 따라 고요해졌는데 시골에서는 그 반대였다. 몸은 지치는데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다. 하루 종일 입을 열지 않는 날도 있었고, 그런 날이 몇 번 반복되자 내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자라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
어느 겨울날 아침이었다. 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이는데 손끝이 아려왔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서울에서는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출근하던 내가, 지금은 작업복 차림으로 굳은살 박힌 손으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전혀 다름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쳐 살고 있는 느낌. 주변에선 모두들 “잘 살아보라”고 격려했지만 정작 나는 내 삶을 붙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비교가 만드는 감정
시골살이를 하는 사람 중에는 농사를 오래 해온 분들도 있었고, 귀농 후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을 보며 자극을 받고 배우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나의 거울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아직 이만큼밖에 못했나, 왜 수익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가, 왜 내 손에 쥔 것은 이리도 초라한가. 이런 생각들이 점점 더 자주 떠올랐고, 비교는 나를 자신 없게 만들었다. 도시에서는 최소한 경력이라는 타이틀이 있었고, 내 역할이 분명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고, 나는 그 현실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게 나를 발견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감정이 왜곡된다
시골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혼자 일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는 일이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좋았다. 조용히 생각할 수 있고, 복잡한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혼자의 시간이 반복되자 생각이 많아졌고 그 생각은 감정으로 뒤바뀌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이 선택이 옳았는지, 누군가에게 필요는 한 건지 같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머리를 맴돌았다. 생각은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은 그 감정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우울이라는 상황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몸으로 먼저 나타났다
어느 날 아침,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것이 싫어졌다. 전날과 같은 시간에 알람이 울렸는데도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 30분이 걸렸다. 몸은 무거웠고, 아무 일도 하기 싫었다. 밥맛도 없었고, 말도 줄었다. 마을회관에도 가지 않게 되었고, 텃밭도 며칠씩 비워두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피로감은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점점 의욕 자체가 사라져 갔다. 웃는 일이 없었으며, 거울 속 내 얼굴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감정은 마음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정작 내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감정
문제는 이런 감정을 누구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주변 어르신들은 “남자는 원래 말없이 사는 거다”라고 늘 말했고, 친구들에게는 “넌 좋겠다. 자연 속에서 살고”라는 말만 돌아왔다. 심지어 배우자에게조차 이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내 우울함이 약해 보일까 두려웠고, 괜히 분위기를 망칠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침묵했고, 그 침묵은 나를 점점 더 안으로 파고들게 만들었다. 말하지 않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라고, 더 깊어지고, 더 무겁게 내려앉는다. 나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마을에서의 역할 부재가 자존감을 흔들었다
시골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사는 공간을 옮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을 안에서의 역할, 존재의 이유 같은 것들이 명확히 느껴지는 곳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농사도 겨우 텃밭 수준이고, 마을 일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는 이 마을에서 필요 없는 사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는 내 직업이 곧 나의 정체성이었지만 시골에서는 나라는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없다는 사실이 자존감을 흔들었고, 그것이 나를 더욱 고립시켰다.
작은 일에서 기쁨을 찾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이렇게 지쳐가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예전에 좋아하던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침에 마당을 쓸면서 흘러나오는 바람 소리만으로도 위안을 얻었고, 비 오는 날 작은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돈되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작은 일부터 해보기로 했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음악을 틀고 책 한 권을 꺼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마을길을 혼자 걷고, 익숙한 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감정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완벽한 해결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울을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 전환점이 되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 우울함을 인정했다. “나는 지금 괜찮지 않다”는 말을 마음속으로라도 하는 순간, 오히려 조금 편안해졌다. 피하려고 할수록 우울은 더 커졌고, 외면할수록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마을회관에도 다시 나가기 시작했고, 마을 일에도 조금씩 참여했다. 물론 여전히 낯설고 어색했지만 누군가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그 인사는 다시 내게 돌아왔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의 우울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꺼내놓아야 한다
중년 남자의 우울은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숨겨져 왔다. 누군가는 이를 약함으로 보고, 누군가는 실패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시기야말로 감정에 가장 솔직해져야 하는 시기라고 믿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완전히 괜찮지는 않다.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고, 이유 없이 눈물이 고이는 날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감정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골살이는 그런 감정을 숨기기보다는 꺼내놓고 바라보게 만든다. 그것이 이 삶의 또 다른 의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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