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시골살이를 글로 남기기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매일이었고 감정마다 다르게 다가왔으며 때론 분명한 답을 갖고 있었고 때론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질문은 아팠고 어떤 질문은 내 삶의 방향을 바꿨다
‘나는 왜 시골로 왔는가’라는 처음의 물음에서 시작해 ‘나는 여기서 잘 살고 있는가’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떠나도 되는가’라는 마지막 질문까지
그 사이에는 외로움도 있었고 분노도 있었고 무너짐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이 지나간 뒤
나는 지금 다시 내게 이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다시 시작하더라도 나는 또 시골을 선택할까”
그리고 이 질문 앞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생각한다
시골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귀촌을 결심하기 전 시골은 내게 이상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고요하고 따뜻하고 자연이 가득하고 인간적인 삶이 있는 곳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시골은 훨씬 더 거칠었고 예민했고 섬세한 조율이 필요한 곳이었다
모든 것이 내 손으로 이루어져야 했고 작은 일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했으며
하루가 고요하기보다 바쁘고 복잡하게 지나갔다
이웃과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았고 외로움은 늘 내 곁에 있었고
생활은 도시보다 훨씬 더 준비가 필요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모든 현실적인 면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면서도
내가 그 속에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골은 내가 이상을 꺾은 곳이 아니라 이상이 현실로 바뀌는 법을 배운 곳이었다
그래서 어렵고 낯설었지만 진짜 삶을 배운 곳이었다
사람과 거리 두고 싶었던 내가 결국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귀촌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인간관계에 지친 나 자신을 쉬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도시에서는 너무 많은 얼굴들과 얕은 관계를 맺으며 감정이 고갈되었고
시골에서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골은 고립된 공간이 아니었고 오히려 사람과의 연결이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가까운 공간이었다
마을회관 인사부터 이웃의 일손 돕기 요청까지
시골에서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 함께 사는 시간이 기본값이었다
나는 처음엔 그 관계가 버거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안에서 정을 배우고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치유되기도 했다
결국 나는 또다시 사람들에게 돌아왔다
다만 이번에는 억지로 맞추는 관계가 아니라
거리도 지키고 마음도 나누는 조금 더 성숙한 방식으로
시골은 인간관계의 해방지가 아니라 다시 인간을 배워야 했던 교실이었다
그 배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불편함 속에서 나다움을 되찾았다
시골의 삶은 불편하다
전기 하나 고장 나면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장 보러 읍내 나가는 것도 작은 원정이고
눈 오는 날은 하루 종일 고립될 수도 있다
이 모든 불편함은 도시에서 누려온 편의가 얼마나 컸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나는 나다워졌다
도시에서는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야 했고 속도에 따라가야 했고
잠깐의 여유마저 죄책감처럼 느꼈지만
시골에서는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아도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우고
일의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게 되었고
매일을 내 방식대로 살게 되었다
불편함은 나를 불안하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회복시키기도 했다.
나는 이제 그 불편함마저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삶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가치 있다
시골살이는 마치 끝이 없는 조립 키트 같다
계속해서 고쳐야 하고 보완해야 하고
언제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정리된 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미완성의 삶이 점점 나를 채워갔다
계획했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지만 그 안에서 성장했고
작은 성공이 크게 느껴지고 실패는 다시 시도할 이유가 되었다
나는 이 삶이 완성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도시에서 가졌던 안정감은 좋았지만
그 안정감은 동시에 정체된 감정이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예측할 수 없는 하루를 살아가고
그 하루하루 안에서 나를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살아 있다는 실감이 있고
그 실감이 내게 이 삶을 충분히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내가 떠나더라도 이 시간은 나를 지탱할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시골을 떠날 수도 있다
몸이 힘들어지거나 관계가 달라지거나 또 다른 삶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실패가 아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그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고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시골에서 보낸 이 시간은 단지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였고 감정의 복원이었고
삶에 대한 태도의 리셋이었다
이제 나는 어디에 가든 조금은 더 단단하게
조금은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기반은 이곳에서 얻었다
그래서 언젠가 떠나게 되더라도
이 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시간이 나를 지탱할 것이다
다시 시작하더라도 나는 또 시골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지금의 삶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쉽지 않았고 외로웠고 상처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오면서
나는 더 진짜 같은 내가 되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또다시 시골을 선택할 것이다
그 선택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선택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시는 내게 속도를 줬지만 시골은 내게 방향을 줬다
도시는 무대를 줬지만 시골은 내 자리를 줬다
나는 다시 시작하더라도
잠시 후회할 수는 있어도
결국 또 시골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또 이 땅 위에서
흙을 만지고 바람을 맞으며
내 삶을 천천히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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