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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39편 : 시골에서 ‘언젠가는 떠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by eoil0023 2025. 7. 16.

처음 시골에 이사 왔을 때, 당초에는 이곳에서 평생을 살 생각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생각’을 넘어서 이미 마음을 그렇게 정하고 있었다.
도시의 번잡함에 지쳐 있었고, 인간관계의 소음 속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내가 나답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온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집을 구하고, 텃밭을 만들고, 장작을 쌓고, 계절을 몸으로 맞이하면서
나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문득문득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지금 당장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아니라,
이곳이 영원한 안식처가 아닐 수도 있다는 현실적 인식이었다.
그 마음은 나를 흔들기도 했고, 동시에 지금 여기에 머무는 내 자세를 더 겸손하게 만들기도 했다.
시골살이는 종착점이 아닐 수도 있다.
그걸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시골살이 현실 : 시골에서 ‘언젠가는 떠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산다

 

시골살이는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올 때, 우리는 자주 정착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쓴다.
‘정착했다’, ‘정착 중이다’, ‘정착이 어렵다’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붙는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삶은 한 번의 정착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매 계절마다 삶의 방식이 달라지고, 관계의 경계가 흔들리고,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순간 또 다른 변수가 나타난다.
그 말은 곧 시골살이는 ‘살아내는 과정’이지,
어디에 뿌리내리고 마침표 찍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서 평생 살겠다’는 다짐보다는
‘오늘도 여기서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살다가 떠날 수도 있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중요한 건 그 가능성을 스스로 허용하면서도
현재에 진심을 다하는 삶의 태도였다.
나는 이곳을 단 한 번에 정착지로 정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더 진지하게 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떠날 가능성을 열어둬야 지금이 더 소중하다

이곳을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전제를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지금의 삶이 훨씬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영원하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대충 살게 되고,
내일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오늘을 미루게 된다.
하지만 ‘이 시간이 언젠가는 끝날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면
오늘의 하늘, 오늘의 햇살, 오늘의 일상이 전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가끔 마당에서 작업하다가 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곤 한다.
이 풍경을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마당의 흙 냄새조차도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애써 감상에 빠지려는 게 아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감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 삶을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여기에 진심으로 머물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자극이다.

언젠가는 몸이 따라주지 않을 날이 온다

귀촌 후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점점 날씨와 계절에 예민해진다.
가을의 찬바람에 무릎이 욱신거리고,
겨울이 오면 수도 얼지 않게 미리 준비해야 하며,
여름엔 더위와 벌레와 싸워야 하고,
비 오는 날이면 예전보다 훨씬 쉽게 피로해진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몸이 아프거나 움직임이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하는 현실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마을의 어르신들 중엔 더 이상 운전이 어려워지자 도시로 이주한 분들도 있고,
겨울을 견디기 힘들어 손자 있는 아파트로 돌아간 분들도 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나에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을 무조건 영원하다고 착각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 일할 수 있을 때,
이 땅 위를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나는 이 삶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관계가 멀어지는 순간 이곳은 더 멀게 느껴진다

시골에서의 삶은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삶의 품질을 좌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관계는 처음엔 따뜻하다가도
작은 오해 하나로 멀어질 수 있고,
사소한 차이로 불편함이 쌓이기도 한다.
나 역시 몇 번 그런 상황을 겪었고,
그때마다 ‘여기에서 오래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곤 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이 관계 속에서 얼마나 편안한가였다.
그러나 관계는 단단하지 않다.
마을이 바뀌고, 이웃이 바뀌고,
내 태도에 따라 관계도 시시각각 흔들린다.
그럴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그건 이별의 계획이 아니라
어떤 가능성 앞에서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과정이었다.

다시 도시를 생각할 때마다 혼란스러워진다

도시의 삶은 매우 편리하다.
교통, 병원, 문화시설, 관계의 익명성.
이 모든 것이 그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가끔은 인터넷에서 서울 사진을 보며
그곳의 밤 풍경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그리고 질문한다.
‘나는 왜 떠났고, 지금 왜 그립고, 그리움은 다시 갈 이유가 될 수 있는가.’
그 물음에 명확한 답은 없다.
그저 혼란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 혼란조차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속에 도시를 품고 있으면서도 시골을 살아가는 것,
그 모순된 감정 위에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것,
그게 지금의 나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도시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지금의 시골살이를 더 진지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떠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은 여기에 있다

나는 다시 도시로 떠날 수도 있다.
그리고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이곳에서의 하루를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살아가게 만든다.
지금 이 마당, 이 흙, 이 하늘,
그리고 오늘의 고요를 마음에 새기며
내일이 아니라 ‘오늘’에 충실할 수 있게 해준다.
언젠가는 떠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분명히 이곳에 있다.
그건 나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이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의 증거다.
시골살이는 언제든 끝날 수 있는 여행이 아니라
끝이 있음을 인정하고도 계속 걷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오늘도 그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