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날씨라는 것은 주로 옷차림을 결정하거나 외출 계획을 조정하는 정도의 요소였다. 비가 오면 우산을 챙기면 되고, 눈이 오면 조금 더 일찍 나서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됐고, 바람이 불어도 창문만 닫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골로 내려오고 나서 날씨는 내 삶 전체를 바꿔버리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이 침수되고, 바람이 센 날이면 기울어 있던 비닐하우스가 날아가며, 눈이 오면 단순히 쌓이는 게 아니라 고립을 의미했다. 처음엔 그 변화에 당황했고, 나중엔 그것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 모든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시골에서의 날씨는 단지 하늘의 일이 아니었다. 땅의 일이었고, 나의 일상이고, 하루의 시작을 바꾸고 끝맺음을 흔드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비가 오면 나는 집 안으로 도망치지 않는다
시골의 비는 도시의 비와는 전혀 다르다. 도시에서는 비가 오면 실내로 들어가 우산을 털고 닫힌 공간에서 소음을 차단하면 그만이지만, 시골에서는 비가 오면 창고부터 비닐하우스까지, 배수로와 마당의 경사도까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빗물이 잘 빠지지 않으면 금세 땅이 젖고, 밭의 작물은 물러지고, 흙은 유실되며, 가끔은 집 앞 도로까지 침수된다. 나는 처음 장마철을 맞았을 때 며칠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밤에도 손전등을 들고 마당을 돌며 빗물의 흐름을 체크했고, 뒷마당 배수로를 다시 파고, 비닐하우스에 고인 물을 퍼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했기에 더욱 긴장감이 컸다. 비는 내게 어떤 감정을 깨우는 존재가 되었다. 때론 불안했고, 때론 두려웠고, 때론 고마웠다. 가뭄 끝에 오는 비는 축복이었고, 수확 앞두고 쏟아지는 폭우는 절망이었다. 이제 나는 비가 예보되면 하루 전부터 준비를 하고, 모든 것을 비에 맞춰 조정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나는 그 피할 수 없음 안에서 내 방식의 질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람이 분다는 건 창문을 닫는 게 아니라 구조물을 지키는 일이다
시골의 바람은 도시의 바람과는 강도부터 완전히 다르다. 도시에서는 바람이 거세면 잠시 창을 닫거나 바람막이를 걸치면 됐지만, 시골에서는 바람이 분다는 것은 ‘무언가가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람이 심한 날에는 지붕의 기와가 들릴 수도 있고, 화분이 쓰러지거나 마당의 시설물이 파손되기도 한다. 나도 그런 날을 겪은 적이 있다. 봄철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인해 마당 한쪽에 세워두었던 간이 온실이 쓰러졌고, 내부에 있던 모종 수십 개가 흙과 함께 흩어졌다. 그 날 이후 나는 바람이 분다는 말이 단순한 기후의 상태가 아니라 일상의 경계선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바람이 예보되면 외부 구조물들을 고정하고, 늘어놓은 것들을 모두 안으로 들이며, 실외 활동을 최소화한다. 바람은 무형의 존재이지만 그 영향력은 모든 것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이다.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대비하는 방향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걸 배웠고, 그 선택 하나가 마을에서의 하루를 지켜주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눈이 온다는 건 ‘고립’을 의미한다는 걸 깨달은 어느 겨울
겨울에 눈이 내리면 도시에서는 풍경이 예뻐지고, 어쩌면 출근길이 불편해지는 정도의 영향이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눈이 온다는 것은 곧 길이 끊기고 고립된다는 의미다. 제설 차량은 주요 도로만 지나가고, 마을 안길이나 집 앞 진입로는 직접 치우지 않으면 하루 종일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내가 처음 눈을 제대로 맞은 해 겨울, 무심코 잠든 사이에 쌓인 눈으로 인해 이틀 동안 마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식료품도 부족했고, 약도 떨어졌으며, 무엇보다 외부와 단절된 그 느낌이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도시에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고립감이 눈 앞에 그대로 펼쳐졌고,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지켜야만 했다. 그 경험 이후 나는 매년 겨울이 오기 전, 장작을 충분히 비축하고, 비상 식량을 마련하며, 차량용 체인을 준비하고, 각종 장비를 손질해 둔다. 시골에서 눈이 온다는 건 낭만이 아니라 생존에 대한 대비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생존을 혼자 준비해야 했기에 더욱 강해져야 했다.
날씨는 기분을 흔드는 감정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날씨는 단순한 자연의 상태가 아니라 내 감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흐린 날이 며칠 계속되면 나도 모르게 무기력해지고, 갑작스런 태풍 예보에는 온몸이 긴장되며, 바람이 거세게 불면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도시에서는 그런 감정을 의식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지만 시골에서는 날씨가 내 삶의 환경 전부가 되기 때문에 그 감정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농작물을 심는 시기도, 수확하는 날도, 외출하는 날도 모두 날씨에 맞춰야 했기에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날씨를 감정의 변수로 인식하게 되었다. 해가 좋은 날이면 기분이 올라가고, 예상치 못한 폭우에는 하루 계획 전체가 무너져 버리며, 그로 인해 느끼는 좌절감이 커지기도 했다. 나는 그 감정의 기복을 인정하고 조절하는 법을 익혀야 했고, 때로는 날씨에 맞춰 내 기분도 바꾸는 훈련을 해야 했다. 시골살이란 결국 ‘날씨와 잘 지내는 법’을 배우는 일이었고, 나는 그 관계를 조금씩 더 다정하게 다뤄가고 있다.
날씨와 자연 앞에서 인간은 작아지고, 관계는 더 가까워진다
한 번은 집중호우가 며칠간 이어졌고, 마을 진입로 옆 도로가 유실되어 통행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도로 복구 작업에 참여했고, 이웃의 도움으로 트럭을 이용해 긴급한 물자를 나르기도 했다. 날씨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고,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 경험은 날씨가 얼마나 위협적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동시에, 위협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계기였다. 바람과 비, 눈과 추위는 모두를 동일하게 흔들었고,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도시에서는 그런 극단적인 기후 상황이 있을 때 시스템이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었지만 시골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해결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관계는 강화되었다. 나는 날씨가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느꼈고, 자연이 삶을 위협할수록 사람의 존재는 더 중요해진다는 걸 배웠다. 그렇게 나는 날씨를 단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관계의 기초로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날씨를 예측하는 사람이 되었다
귀촌한 지 2년이 지나고, 나는 이제 아침에 하늘을 보면 오늘의 날씨를 대략 예측할 수 있게 되기까지 하였다. 구름의 두께, 바람의 방향, 산 너머로 넘어오는 안개, 공기 중의 습기, 이런 것들을 종합해 오늘 어떤 일이 생길지를 판단한다. 날씨 앱도 참고하지만 결국 가장 믿는 건 내가 느끼는 감각이다. 그것은 매일 땅을 밟고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시간 속에서 얻어진 경험의 결과이다. 시골살이는 자연을 읽는 기술을 만들어주었고, 나는 그 기술을 바탕으로 내 삶을 조금씩 안정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날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변화에 맞춰 살아가는 유연함을 택했고, 그것은 시골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생존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가 오면 맞이하고, 바람이 불면 낮추고, 눈이 오면 멈추는 삶, 그 순응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강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날씨는 여전히 나를 위협하지만 동시에 나를 단련시켜주는 스승이기도 하다. 나는 그 스승 앞에서 겸손해졌고, 그러면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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