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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45편 : 너무 많은 시간을 나에게 쓰게 된 날들

by eoil0023 2025. 7. 28.

시골살이, 나 자신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환경

시골살이는 매일매일이 나와 대화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누가 물어보는 사람도, 감시하는 사람도 없다. 오늘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는 건 오직 나 혼자다. 도시에서는 끊임없이 누군가가 내 시간을 빼앗아갔다. 상사의 지시, 친구의 약속, 가족의 요청, 심지어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들까지도 내 하루를 점령했다. 하지만 시골살이 안에서는 그 모든 외부 자극이 줄어든다. 그 결과 남는 건 고요함이고, 그 고요함은 나를 나 자신에게 끌고 간다. 자연스럽게 생각은 내면을 향하고, 행동은 혼잣말과 판단으로 연결된다. 시골살이는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만들었고, 그 질문에 하루하루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시골살이라는 삶 안에서,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시골살이 현실 45편 : 너무 많은 시간을 나에게 쓰게 된 나날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매일 묻는 날들

시골살이 시작한 초반에는 무조건 바빴다. 집 정리, 텃밭 준비, 장작 구입, 냉난방 해결 등 할 일이 넘쳐났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일상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갑자기 한가해졌다. 도시에서는 늘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시골살이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구성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몰입하는지, 무엇을 하면 기분이 나아지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시골살이는 그 질문을 매일 던졌고, 나는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나의 감정과 욕망을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했다. 결국 시골살이는 내 관심사를 정리하고, 삶의 방향성을 다시 구성하는 시간을 만들었고,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선명하게 알아가게 되었다.

시골살이 덕분에 얻게 된 사치, ‘생각할 여유’

과거에 도시에서는 생각할 시간은 항상 사치였다. 늘 무언가에 쫓기고, 하루는 너무 짧았고, 잠들기 전까지도 계획과 불안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하지만 시골살이는 그런 압박이 없다. 대신 ‘생각할 시간’이 넘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의 공간은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영역이 되었다. 시골살이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감정을 분석하고, 내 습관을 돌아보고, 나의 과거를 정리하며, 미래를 설계하게 되었다. 시골살이는 단순한 물리적 이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속 공간을 재배치하는 일이었고, 나는 그 빈 공간에 내 삶의 본질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시골살이로 인해 처음 써본 내 이름의 시간표

도시에서는 내가 짠 시간표는 의미가 없었다. 회사가 정한 출근 시간, 사회가 정한 점심 시간, 타인의 요청에 맞춘 일정. 모두가 정해준 리듬 속에 나는 존재했다. 하지만 시골살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짜야 한다. 오늘 몇 시에 일어날지, 어떤 순서로 하루를 살지, 어디까지 일하고 어디서 멈출지. 그 모든 흐름이 나에게 달려 있었다. 처음엔 그 자유가 불안했다. 가이드가 없으면 불안한 건 나의 습성이었다. 그러나 시골살이는 그런 불안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스스로 계획하지 않으면 하루가 흘러가고, 그렇게 흘러간 하루는 다음 날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나는 점점 ‘나만의 리듬’을 만들게 되었고, 그 리듬 속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시골살이는 내 이름으로 된 시간표를 처음으로 나에게 선물한 삶이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나에게 쓰는 건 때론 두렵기도 했다

반대로 시골살이에는 시간이 많다. 그리고 그 시간 대부분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 문제는, 그 시간이 많을수록 내가 무슨 사람인지 똑똑히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잘 몰랐던 게 보였다. 쉽게 포기하는 성격, 꾸준하지 못한 태도, 감정의 기복, 결정장애 같은 것들. 시골살이는 내가 누구인지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서 두려웠다. 나는 지금껏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왔지, 내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통제하는 방식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골살이는 그런 불편한 진실까지 껴안으라고 말하는 삶이었다. 나는 점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수용은 내 자존감을 높여주는 과정이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단련시키는 도구였다

시골살이는 고독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고독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깊은 평화를 준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가 달라졌다. 외로움은 자연스레 찾아오지만, 그 고독을 견디고 나면 거기엔 고요와 안정이 있었다. 혼자 밥을 짓고, 혼자 밭을 일구고, 혼자 장작을 패며 나는 점점 나를 단련시키고 있었다. 시골살이는 사람들과의 관계 없이도 버틸 수 있는 근육을 길러주었고, 나는 이제 누군가와 있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하지 않게 된 나는, 세상 어느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시골살이란 결국 ‘자기 사용법’을 익히는 과정

어떤 도구도 제대로 쓰려면 사용법이 필요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껏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쓰는지 몰랐고, 스스로를 오용하며 살아왔다. 시골살이는 나의 사용법을 익히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은 나를 많이도 돌아보게 했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잘 작동하는지, 무엇을 해야 힘이 나는지, 무엇을 하면 지치는지. 시골살이는 그런 디테일을 매일 실험하게 만들었고, 나는 조금씩 나를 다루는 기술을 얻게 되었다. 이제는 감정이 요동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산성을 올리는 나만의 루틴이 뭔지를 안다. 시골살이는 내 인생의 사용 설명서를 스스로 작성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나에게 시간을 쓰는 삶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나에게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게 낭비 같았고, 어색했고, 때로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시간이야말로 내 삶을 회복시키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시골살이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를 되묻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며 살아왔다. 도시에서는 나를 위한 시간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골살이는 나를 중심에 두었고, 나는 그 중심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나에게 시간을 쓰는 일은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고, 시골살이는 그 사랑을 회복하는 공간이었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 시간을 쓴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이 삶은 나의 것이고, 나는 그 삶을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