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속에서 마주한 낯선 감정의 세계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예상하지 못하게 겪은 감정들이 있다. 단순히 외로움, 고립감 같은 일반적인 감정보다는, 그보다 더 섬세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시골살이 속에 숨어 있었다. 도시에서의 삶은 늘 자극적이고 빠르기 때문에, 감정을 깊이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그러나 시골살이는 조용했고, 그 고요함은 내 안의 감정을 가만히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그 감정들이 어색하고 낯설었다. 어떤 날은 설명할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왔고, 어떤 날은 이유 없는 평온함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시골살이의 삶은 단순한 것 같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나는 내가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들과 마주했다. 그것은 시간이 많아서 생긴 감정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시골살이라는 특정한 환경이 만들어낸 내면의 깊은 울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들을 지금이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아주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무언가가 지나가고 있다는 감각
시골살이를 하면서 처음으로 '시간이 지나간다'는 감각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도시에서의 시간은 늘 내가 쫓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빨리 출근해야 했고, 빨리 업무를 마쳐야 했고, 일정에 늦지 않기 위해 뛰어야 했다. 그러나 시골살이는 완전히 달랐다. 시간은 내가 붙잡지 않아도 흐르고,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계절은 바뀌었다. 그러자 나는 시간이라는 것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봄이 오고, 다시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이 지나갈 때, 그 안에 머무는 나의 감정도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시골살이라는 삶은 그렇게 계절의 흐름과 함께 나의 감정까지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만들었고, 그 안에서 나는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흘려보내고 있다는 감각을 익혀갔다. 그것은 애써 지우려 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었고, 지금이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흐름의 감정이었다.
이유 없는 슬픔과 근거 없는 평온 사이에서
시골살이를 하다 보면,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가끔 눈물이 나는 날이 있다. 아침 햇살이 따사로운 날, 마당에 내려앉은 새 한 마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마음이 저릿하게 울리는 날. 그런 날들은 도시에서는 없었던 날이다. 이유 없는 슬픔이지만 그것은 절대 불필요한 감정이 아니다. 시골살이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울음, 설명할 필요가 없는 감정. 시골살이의 고요함은 그런 감정의 통로를 자연스럽게 열어주었다. 반대로 근거 없는 평온도 찾아온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하루가 유난히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감정이 마음 전체를 덮을 때가 있다. 그 감정은 도시의 성취감과는 다른 차원의 만족감이었다. 시골살이는 그런 감정을 허락했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귀한 감정임을 알게 되었다.
고독은 불편하지만 깊은 감정을 깨운다
시골살이에서 가장 크게 느끼게 되는 감정은 '고독'이다. 이웃과도 멀고, 사람들과의 접촉이 적은 시골살이는 내면의 공간을 확장시키는 데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그 고독은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해방감으로 다가온다. 고독은 내면을 정리하게 만든다. 도시에서는 늘 외부의 자극 속에 있었기에, 나라는 사람을 선명히 보지 못했다. 하지만 시골살이는 고독 속에서 내 존재의 결을 또렷이 비춰준다. 슬픔, 분노, 공허, 기대, 그 모든 감정들이 스스로에게 다시 돌아오는 구조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고독은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외로움은 감정을 견디게 하고, 고요함은 그 감정을 정리하게 하며, 시간은 그 정리된 감정에 의미를 부여했다. 시골살이는 그 과정을 천천히 반복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아니면 절대 깨닫지 못할 내 감정의 뿌리를 하나씩 이해해가고 있다.
시골살이는 감정의 속도를 늦춘다
도시에서는 감정도 시간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기쁜 일은 SNS에 공유하고, 슬픈 일은 술자리에서 해소하며 넘긴다. 하지만 시골살이에서는 감정이 오래 머문다. 마당에 핀 꽃을 보며 문득 떠오른 옛 추억이 몇 시간 동안 마음에 머무르고, 어느 날 갑자기 느껴진 외로움이 며칠 동안 풀리지 않기도 한다. 시골살이는 감정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기 때문에,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게 된다. 그것이 처음에는 버거웠다. 하지만 그 느린 감정은 더 진한 이해로 이어졌다.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곱씹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시골살이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그런 감정의 속도를 받아들이면서 나는 나의 삶을 훨씬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이 역시 지금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감정의 성장이었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은 감정의 기쁨
시골살이의 매일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하다. 일어나서 물을 끓이고, 텃밭을 살피고, 냉장고를 열어 먹거리를 고민하고, 바람이 불면 창문을 닫고, 마을 방송이 울리면 귀를 기울인다. 그런 단순한 일상은 지루함을 예고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작은 감정들이 살아 있다. 아침에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며 느껴지는 생존의 안도감, 밭에서 캐낸 무 하나에 느끼는 성취감, 오후 햇살이 거실에 머물 때 마음에 피어오르는 평화. 시골살이는 그런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든다. 도시에서는 빠르게 지나쳤던 감정들이 시골살이 안에서는 하나하나 인식되고, 정리되고, 마음 깊이 새겨진다. 감정이 크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감정이 명확하지 않아도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건 오직 지금이기에 가능한 감정, 시골살이라는 환경이기에 만날 수 있었던 내면의 미묘한 기쁨이었다.
잃는 것과 얻는 것 사이의 감정 균형
대신 시골살이는 무엇을 포기해야 얻는 삶이다. 도시에서의 안정된 수입, 편리한 인프라, 빠른 연결, 다양한 사람들, 화려한 기회들을 내려놓고, 대신 고요함, 단순함, 자율성, 시간, 자연을 얻는 삶이다. 이 균형은 단순히 실리적인 교환이 아니라 감정의 교환이었다. 도시에서 얻었던 자극의 감정을 잃고, 시골에서의 정적인 감정을 맞이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 감정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무언가가 비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골살이가 길어질수록 나는 감정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뭔가 격렬한 감정은 줄었지만, 대신 더 깊고 오래가는 감정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감정은 천천히 나를 바꿨고, 나는 더 이상 자극을 갈망하지 않게 되었다. 시골살이는 그런 감정의 전환을 통해 나의 기준을 재정비했고, 지금이 아니면 그런 감정의 전환을 받아들일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과 함께 울고 웃는 감정
또한, 시골살이는 자연과 연결된 삶이다. 비가 오면 일이 늦춰지고, 해가 뜨면 하루가 시작된다. 계절이 바뀌면 일상의 패턴도 바뀌고, 그 변화에 따라 감정도 함께 움직인다. 봄에는 설렘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생존 본능이 올라오며, 가을에는 감정의 정리가 찾아오고, 겨울에는 묵묵한 버팀이 요구된다. 시골살이 안에서 나는 자연의 감정을 따라가게 되었다. 마치 자연도 감정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졌고, 그 감정은 나의 감정과 동기화되었다. 비 오는 날의 잔잔한 슬픔, 눈 쌓인 아침의 고요한 기쁨, 여름 폭염의 짜증, 가을 단풍의 아련함. 이 모든 감정은 자연을 매개로 내게 전달되었고, 나는 그런 감정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시골살이란 단순히 환경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일이었고, 지금이 아니면 결코 겪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지금이라서 가능했던 감정의 총합
시골살이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었다. 도시에서는 감정을 정리하거나 설명해야 했지만, 시골살이는 감정 자체를 그대로 품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 삶은 나를 감정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었고, 나는 감정을 감추지 않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건, 이런 감정들은 지금 이 시기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도시에서의 바쁜 일상 속에서는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없었고, 이런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을 시간조차 없었다. 하지만 시골살이라는 환경, 이 조용하고 단순한 공간이 있었기에 나는 이런 감정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나를 더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지금이 아니었다면, 이런 감정은 나를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시골살이 속에 있고, 그래서 이 모든 감정을 온전히 내 것으로 체험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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