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을 결심할 때, 나는 계절별 풍경을 기대했다. 봄에는 새싹이 피고, 여름에는 초록이 우거지고, 가을엔 낙엽이 흩날리며, 겨울엔 눈 쌓인 마당에서 고요함을 느끼는 삶. 그런 상상을 했다. 하지만 첫 여름을 맞이했을 때, 나는 단 하루 만에 그 환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시골의 여름은 단지 덥기만 한 계절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터지고, 썩고, 들끓는 계절이었다. 벌레가 창문을 뒤덮고, 풀은 하루 만에 무성해졌으며, 냄새는 이웃집 뒷마당까지 퍼졌다. 밖에서 일하려면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고, 오후에는 실내도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도시에서는 에어컨만 켜면 해결되던 문제가, 시골에서는 삶 전체를 재설계해야 할 만큼의 충격이었다.
나는 이 계절이 단지 ‘덥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골의 여름은 몸과 마음, 그리고 생활의 모든 면을 시험하는 시기였다. 이 글은 그런 여름의 민낯을 담은 기록이며, 아직 귀촌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반드시 알려주고 싶은 현실이기도 하다.
자연은 초록이 아니라 폭력이였다
시골의 여름은 초록빛이 넘친다. 처음엔 그 모습이 싱그럽고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그 초록은 금세 통제 불가능한 속도로 자란다. 잡초는 하루 사이에 허리 높이까지 자라며, 텃밭의 경계는 사라지고, 고라니가 밭을 밟고 지나가도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게 된다.
나는 첫 여름, 제초기를 사지 않고 낫으로 풀을 베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포기했다. 새벽 6시에 시작해도 10시쯤이면 기온은 32도를 넘었고, 땀이 등과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뱀이 나올까 무서워서 두리번거리며 낫질을 했고, 그 사이 모기가 허벅지를 무자비하게 물었다. 벌레 퇴치제를 뿌리고 긴 팔 옷을 입어도 소용없었다. 풀을 베고 나면, 내 옷에는 벌레, 진드기, 거미가 따라붙었다.
게다가 폭우는 또 다른 재앙이다. 도시에서는 창문만 닫으면 끝이지만, 시골에서는 마당이 물에 잠기고, 배수구가 막히며, 지붕에서 빗물이 새어 내렸다. 나는 어느 날 새벽 4시에 빗물 소리에 놀라 일어났고, 세탁실 바닥에서 발이 ‘척’ 소리를 내며 젖는 걸 느꼈다. 그 물은 하수구에서 역류한 것이었다.
하루 종일 퍼내고, 말리고, 소독했다. 그날 이후 나는 ‘비’가 반갑지 않았다. 시골의 비는 자연의 선물이 아니라, 예고 없는 침입자였다.
또 하나, 여름의 시골은 ‘냄새의 계절’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금세 상하고, 뒷마당에서 퇴비를 만들면 그 냄새가 그대로 방 안까지 들어온다. 주변에 축사가 있다면 그 냄새는 24시간 내내 따라붙는다. 나는 처음에 향초를 피워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냄새에 익숙해지는 법밖에 없었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그 자연이 정돈되지 않은 채로 마구 자라기 시작하면 그것은 폭력처럼 느껴진다. 시골의 여름은 그 폭력을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가며 버티는 시간이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지쳐간다 – 시골 여름의 심리적인 영향
무더운 날씨와 벌레, 끝없는 제초 작업만으로도 몸은 쉽게 지친다.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심리적인 피로감이다. 도시에서는 에어컨이 있는 공간으로 피하면 된다. 카페, 도서관, 백화점 등 회피 공간이 다양하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피할 곳이 없다.
방 안도 덥고, 마당은 벌레가 들끓고, 이웃집의 뒷마당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하루 종일 나고, 전기도 자주 끊긴다.
여름 한복판에서 나는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겐 이 감정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밖에서 이웃을 만나기도 어렵고, 만나도 서로 지쳐 대화가 길지 않다. 말없이 이삿짐센터를 부른 집이 두세 군데 생겼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여름이 시작되자, 떠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여름에는 시골 공동체 내부의 분위기도 무거워진다. 무더위 속에서 하는 공동 작업은 평소보다 더 짜증을 유발하고, 작은 말 한마디가 오해로 이어지기 쉽다. 나는 어느 날 회관 청소 중, 물걸레질을 하다가 한 어르신께 “물 좀 바꿔드릴까요?”라고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내가 못하니까 도와주겠다는 말이오?”였다. 그날 이후 그분은 나를 피했고, 나는 그 이유를 여름이 끝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 더위 때문에 예민했던 거라는 말이었다.
여름은 이해보다 오해가 빠르고, 친절보다 피로가 먼저 나타나는 계절이다. 그만큼 사람도, 감정도 쉽게 망가지고, 회복도 더디다.
여름의 시골살이는 육체적인 노동과 함께 감정적 외로움과 피로, 고립이 겹쳐서 찾아온다. 나는 그 시기를 견디기 위해 스스로 몇 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새벽 5~9시에만 바깥일을 한다
10시 이후에는 무조건 실내 작업만 한다
더울 때는 할 일을 줄이고, ‘해야만 하는 일’만 남긴다.
매일 차가운 물로 샤워하고, 마을 우물에 발 담그는 시간을 정해놓는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쉬는 날도,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 방어’라 생각한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보호하며 여름을 버텨내야만 했다. 시골의 여름은 절대로 아무 대비 없이 들어가선 안 된다.
여름을 준비한다는 건, 시골살이 전체를 설계하는 일이다
시골에선 여름을 ‘계절’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략’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 계절은 단순히 더운 정도가 아니라, 생활이 무너질 수 있는 리스크가 도처에 깔린 시기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준비를 한다:
1. 제초 계획 수립
풀은 한 번에 다 베려고 하지 않고, 구역별로 나눠 작업 일정을 만든다. 하루 30평 이내로 한정하고, 새벽에만 작업한다. 제초기와 예비 연료, 예비 칼날은 반드시 준비해둔다.
2. 벌레 차단
모기장, 창틀 방충망, 초음파 해충기기, 베란다 LED등 등을 설치한다. 모기향과 진드기 스프레이는 박스 단위로 구입하고, 실내에는 전기 모기채를 구비해둔다.
3. 폭염 대비 생활 동선 재조정
오전엔 외부 일, 오후엔 실내 정리, 저녁엔 마당 환기. 하루 일과를 온도에 따라 설계해야 한다. 작은 휴대용 선풍기와 손 선풍기, 아이스팩을 외출용으로 항상 챙긴다.
4. 마음의 에너지 관리
여름에는 무리하지 않는다. 마을 일도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가급적 ‘선택과 집중’으로 참여한다. 타인의 말에 민감하지 않도록, 감정적으로 ‘한 박자 쉬는 습관’을 들인다.
이러한 준비 없이 맞이한 첫 여름은 정말 지옥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시골의 여름은 체력과 생활기술,
그리고 감정관리까지 포함된 종합 생존 프로젝트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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