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을 결심한 사람들의 가장 흔한 로망 중 하나는 ‘텃밭’이다. 손수 땅을 갈고, 제철 작물을 심고, 그걸 따서 아침 밥상에 올리는 삶. 마당에 상추가 자라고, 고추를 땄다며 이웃과 나누는 삶. 그런 그림 같은 장면들은 SNS에서 수없이 소비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나도 귀촌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준비한 것도 ‘텃밭 공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텃밭은 결코 힐링이 아니었다. 마당의 작은 땅은 매일 돌봐야 하는 ‘고정된 업무’였고, 비가 오면 더 걱정되고, 벌레가 생기면 퇴치해야 했고, 햇볕이 너무 강하면 작물이 죽기도 했다. 상추가 쑥쑥 자라 기쁨을 주기도 했지만, 더 많은 날엔 “내가 이걸 왜 시작했을까” 싶었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일 수도 있는 텃밭 농사를 ‘환상’이 아닌 ‘현실’로 정리한 글이다. 농사 경험이 없었던 도시인이 처음 텃밭을 시작하면서 겪는 시행착오, 그리고 2년 차가 된 지금,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배웠는지 솔직하게 나눈다
텃밭 농사, 시작은 쉽지만 유지가 지옥이다
귀촌 첫해 봄, 나는 마당의 6평 정도를 텃밭으로 만들었다. 삽으로 땅을 일구고, 퇴비와 상토를 섞고, 모종 시장에 가서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상추를 사서 심었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심기만 하면 되겠지, 땅이 다 알아서 키워주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일주일쯤 지나자 잎이 자라고 줄기가 올라왔다. “이게 시골이지” 감탄하면서 매일 아침마다 물을 주며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벌레가 잎을 갉기 시작했고, 상추가 갑자기 누렇게 변했다. 무슨 병인지 몰라 인터넷을 검색했지만 사진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웃 어르신에게 물어봤더니
“요즘 벌레가 약해. 농약 안 치면 다 망가져.” 라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유기농’이라는 이상을 품고 있었기에 농약을 치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뒤, 상추는 완전히 시들었고, 고추 잎은 구멍 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며칠 비가 오자 뿌리가 썩었고, 비가 너무 안 오는 날엔 땅이 갈라지며 모종이 말라 죽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텃밭 농사는 ‘심는 일’이 아니라, ‘끝없는 돌봄의 연속’이라는 것을. 작물은 스스로 자라지 않는다. 매일 땅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고, 벌레의 종류를 파악해야 하며, 물을 줄 타이밍을 조절해야 한다. 하루만 방심해도 진드기나 깍지벌레가 번져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을..
텃밭은 ‘한 번 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마치 반려동물을 돌보듯 매일의 루틴이 필요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루틴은 결코 여유롭지 않았다.
수확의 기쁨? 현실은 병충해, 실패, 그리고 버려지는 작물들
사람들은 텃밭에서 자란 작물을 따서 식탁에 올리는 장면을 꿈꾼다. 나도 처음 수확한 상추와 깻잎으로 삼겹살을 싸 먹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그 기쁨은 너무나 짧았고, 현실은 수확보다 ‘손해’가 더 많은 구조였다.
예를 들어 고추를 키울 때, 내가 먹은 건 열매의 20%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벌레 먹거나 비틀어졌거나, 미성숙 상태에서 떨어져 버렸다. 병에 걸린 작물은 금세 퍼졌고, 옆 작물까지 감염되어 밭을 갈아엎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수확 시기의 혼란이었다. 수확은 정해진 날짜가 없고, 갑자기 몰려온다. 특히 토마토, 오이, 상추는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익는다. 혼자 살다 보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수확이 밀려왔고, 보관도 어렵고, 요리할 시간도 부족했다. 결국 절반 이상은 상하거나 썩어서 버려졌다.
텃밭 농사의 아이러니는 여기 있다.
관리가 안 되면 작물이 자라지 않고,너무 잘 자라도 처리하지 못해 낭비된다는 것이다.
또한, 자급자족이라는 환상도 허상이었다. 상추, 고추, 가지를 수확하더라도 밥상 전체를 채우긴 어렵다. 쌀, 육류, 양념, 과일 등은 여전히 구입해야 했다. 즉, 텃밭으로는 식재료 일부만 보충할 수 있을 뿐, 진정한 자급은 넓은 땅과 숙련된 노하우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런 시행착오 끝에, 나는 가꾸는 작물을 줄였다. 매년 새로운 걸 시도하기보다, 나에게 맞는 작물 3~4가지만 키우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 상추(반복 수확 가능)
- 고구마(벌레에 강하고 저장이 쉬움)
- 대파(관리 간편)
- 방울토마토(적은 수확량에도 활용도 높음)
그리고 수확은 나눴다. 넘치는 작물은 이웃과 교환하거나 미리 나눔을 계획해 버려지는 양을 줄였다. ‘많이 키우는 것’보다 ‘끝까지 먹을 수 있는 양만 키우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텃밭 농사는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텃밭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작업’으로 인식했다. 일주일에 몇 번만 나가서 물 주고 잡초 뽑고, 열매 따는 활동.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텃밭은 일회성이 아니라 매일의 일과이자 감각의 흐름이라는 것을.
아침에 마당을 나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작물의 색과 줄기의 각도다. 어제보다 잎이 쳐져 있다면 수분이 부족하거나 뿌리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다. 벌레가 있나 없나 살피고, 새가 다녀갔는지도 흔적을 확인해야 한다. 텃밭은 이렇게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매일 ‘돌봄’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돌봄은 단지 ‘수확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내 삶의 리듬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감정이 무너지는 날, 슬픔이 밀려올 때 텃밭에 나가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손으로 흙을 만지고, 줄기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나는 내 하루를 되돌아봤다.
‘오늘 나는 나를 얼마나 잘 돌봤는가?’
텃밭은 내 삶의 거울이자,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텃밭을 다시 ‘힐링’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힐링은 단지 ‘예쁜 그림’이나 ‘초록색 식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건 매일의 실패, 끝없는 시행착오, 땀과 흙과 좌절과 복구를 거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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