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시골살이 현실 2편: 외롭고 불편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

eoil0023 2025. 6. 28. 22:49

서울을 떠나 시골로 귀촌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어때? 시골은 진짜 좋아?”
그 질문에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시골살이는 '좋다' 또는 '나쁘다'라는 단순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복합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시골은 분명 불편하다. 전기가 나가면 대처가 어렵고, 눈이 내리면 마을 전체가 고립된다.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 적은 사람들 속에선 더 복잡한 인간관계가 펼쳐진다.
마을회관에서 누가 뭘 했는지, 어디 갔다 왔는지 소문이 빠르게 도는 곳이 바로 시골이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을 겪고도, 나는 여전히 이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에서의 속도와 편리함은 때론 삶을 납작하게 만든다.
그에 비해 시골은 덜 편하지만, 대신 삶을 더 깊고, 더 진하게 만들어 준다.

이 글은 시골살이 1년을 지나며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게 된 진짜 이유'를 정리한 것이다.
단지 예쁘고 한적해서가 아니다.
살아있는 느낌이 매일 새롭게 찾아오는 곳, 그게 시골이었다.

 

시골에서 ‘내 삶’을 직접 만드는 감각

도시에서는 삶이 이미 설계되어 있었다.
출퇴근 시간, 업무 시간, 점심 시간, 여가 시간까지.
모두가 정해진 규칙 안에서 움직였고,
그 사이에서 내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하루를 내가 직접 만든다.
아침 6시에 눈을 뜨고, 텃밭에 나가 작물을 살펴보며 하루가 시작된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강요하는 일정도 없다.
오늘은 나무를 베고, 내일은 장작을 쪼갠다.
비가 오면 그냥 쉰다.

그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은 점점 선명해졌다.

특히 내가 직접 손으로 만든 것들이 삶을 채워줄 때 이런 감각은 더 강해진다.
마당의 장독대, 화단에 심은 국화, 집 뒤 텃밭의 감자와 고추.
이 모든 것이 내 손끝에서 시작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시골살이는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라
삶 자체를 창조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자급자족은 낭만이 아니라 중노동이었다

시골에 오기 전, 나는 '자급자족'이라는 말을 멋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그건 ‘멋’이 아니라 노동이었다.
텃밭은 제때 관리하지 않으면 잡초에 먹히고,
닭은 새벽부터 울며 알을 낳는다.
퇴비는 썩은 풀과 음식물을 뒤섞어 수개월 동안 발효시켜야 쓸 수 있다.

전기도 아껴야 했다.
우리는 태양광 보조전력을 쓰기 때문에
날씨가 흐리면 세탁기나 전자렌지 사용도 조절해야 했다.
겨울에는 기름 보일러와 함께 장작난로를 병행했는데,
나무를 자르고, 말리고, 저장하는 일이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땀에 젖고, 손에 가시가 박히고, 허리가 아픈 그 과정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자급 활동은
내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삶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시골살이를 통해 나는
‘살아남는 방법’이 아니라 ‘제 손으로 살아내는 방법’을 배웠다.

시골살이 현실 2: 외롭고 불편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다.

외로움, 나의 고요한 선생님이 되다

시골에서의 가장 큰 적은 사실 '고립'이었다.
이웃이 있어도 대화할 사람이 없다.
대부분 나이 차이가 많고, 공통의 관심사도 없다.
문을 열면 나무와 산, 하늘뿐이다.

그 고요함은 어떤 날엔 치유였고,
어떤 날엔 내면을 갉아먹는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점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변했다.

도시에서는 듣지 못했던 내 내면의 목소리가
시골에서는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나는 왜 이곳에 왔을까?’,
‘무엇을 두고 떠났고, 무엇을 얻고 싶었던 걸까?’

이런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고요한 선생님이 되었다.

이제 나는 외로움을 견디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길을 찾는 법을 익히고 있다.

사계절의 흐름이 바꾼 삶의 속도

도시에서는 계절이 달력으로만 존재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계절이 삶을 움직이는 실체다.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김을 매고,
가을에는 수확하고, 겨울에는 준비하고 쉰다.

이 사계절의 리듬은
내 삶에 질서와 의미를 불어넣어주었다.

시간이 아닌 계절 단위로 살아가게 되면서
내가 가진 조급함은 사라지고,
삶의 속도는 자연에 맞춰졌다.

봄에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고,
여름엔 땀 흘려 일한 대가를 얻었으며,
가을엔 그 노력의 결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겨울은 단순히 춥고 힘든 계절이 아니라
이 모든 걸 되돌아보고 다음을 준비하는 쉼표였다.

시골은 도피처가 아닌 전환의 공간

많은 이들이 시골을 도피처로 생각한다.
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임시 피신처처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골은 도피가 아니라 전환이다.
삶의 형태를 바꾸고,
나를 둘러싼 환경을 완전히 뒤집는 선택이다.

이곳에서 살아보며 나는 확신하게 됐다.
사람은 편리함 속에서 행복을 찾기 어렵고,
불편함 속에서 비로소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도시에서는 누구나 바쁘다.
하지만 그 바쁨이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인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시골은 그 여유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여유는 결코 무료하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고민과 선택을 요구한다.
그 속에서 나는 매일
‘지금 이 삶이 나다운가?’를 묻고 답한다.

불완전하기에 더 진짜 같은 삶

시골살이는 힘들다.
불편하고, 외롭고, 때로는 막막하다.
하지만 그 속에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숨어 있다.

삶을 ‘산다’는 것의 의미,
내가 어떤 인간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진짜 내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들.

나는 아직도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시골은 하루하루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은 때로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실패조차도 값지다.
도시에서는 잊고 살았던 나를,
여기서는 매일 다시 만나기 때문이다.

시골은 완벽한 곳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 불완전한 곳이기에,
더 진짜 같은 삶이 가능하다.

이제는 누가 다시 도시로 돌아가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여기서 나는 살아 있고,
도시에서는 그냥 ‘존재’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