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를 하며 몇 번이나 떠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자연은 아름다웠지만 예측 불가능했고, 고립과 고장, 관계의 피로가 몰아쳤다. 그 고비를 넘기고 다시 이곳에 머무르기로 한 이유를 기록한다.
시골에 살다 보면 의외로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진짜 후회한 적 없어요?”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후회한 적? 수도 없이 많았어요.”
정말 그랬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감탄한 날보다,
예기치 않은 사건 앞에서 ‘이 삶을 내가 왜 선택했나’ 자책한 날이 더 많았다.
많은 사람들은 시골을 이상화한다.
조용하고 한적하며,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 속에서 차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삶.
그 그림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비 오는 날 옥상에 텐트를 치고 자는 낭만’과 같다.
정말로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면, 기후, 고장, 외로움, 갈등, 고립 같은 현실이 더 자주 얼굴을 들이민다.
이 글은 그런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이야기다.
귀촌 2년 차가 되기까지, 몇 번이나 짐을 싸고 싶었던 순간들,
그리고 결국 그 모든 마음을 꾹 참고 다시 삽을 들고 돌아선 날들에 대한 기록이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시골로 떠나려 하거나, 막 시작했거나, 혹은 도망치고 싶다면
이 이야기가 하나의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
첫 번째 위기: 장마와 정전, 고립의 공포
시골에 내려와 첫 장마를 맞이한 건 6월이었다.
그해 유독 비가 길고 강하게 내렸다.
처음엔 시원해서 좋았다.
땅도 촉촉해졌고, 텃밭의 작물도 쑥쑥 자랐다.
하지만 3일째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산에서 물이 내려와 마당이 잠기기 시작했고,
지하 배수로는 역류하면서 집 안으로 물이 들어왔다.
그 와중에 전기가 나갔다.
그 순간 나는 진짜 겁이 났다.
도시에선 정전이 되면 10분 안에 복구되지만,
여기는 복구까지 1박 2일이 걸렸다.
핸드폰은 터지지 않았고,
주변 마을까지 도로가 잠겨 나갈 수도 없었다.
비바람 치는 집 안에서 손전등 하나 들고
장독대가 떠내려가지 않게 밧줄로 묶는 내 모습이
너무도 현실감 있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날 밤, 촛불을 켜고 앉아 아내와 나눈 대화는
정말 솔직하고 절박했다.
"우리 이사 갈까? 이건 진짜 사람 사는 환경이 아닌 것 같아."
두 번째 위기: 이웃과의 갈등, 외로움보다 무서웠던 인간관계
마을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존재한다.
그건 도시의 법이나 규칙과는 다르다.
말로는 친절하고 따뜻하지만,
실제로는 관찰과 암묵적 규율로 돌아간다.
처음 몇 달은 괜찮았다.
나는 나름대로 잘 적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내가 마을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이장님을 거쳐 주변 어르신들 사이에서
‘이기적이다’, ‘도시 사람은 역시 다르다’는 식의 말로 퍼졌다.
그때 처음으로
‘아, 이건 그냥 불참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어긴 거구나’라는 걸 실감했다.
진짜 문제는 그 후였다.
어르신 한 분이 내 텃밭 앞을 지나다가 작물이 덜 자랐다고 말했고,
다음날 몇몇 어르신들이 와서
“이런 방식은 여기 안 맞는다”는 식으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감정이 올라왔다.
‘내 땅에서 내가 농사짓는데 왜 참견하지?’
하지만 말을 삼켰다.
이게 바로 시골이라는 공동체 속 묘한 균형이니까.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또 나눴다.
“우리 진짜 잘못된 선택한 거 아닐까?”
세 번째 위기: 겨울의 고립과 심리적 붕괴
겨울은 시골살이의 ‘진짜 시험대’다.
첫눈은 낭만이다. 하지만 두 번째 눈부터는 전쟁이다.
그해 12월 말, 폭설이 내렸다.
30cm 가까운 눈이 하루 만에 쌓였고,
마을 입구 도로는 완전히 마비됐다.
우리는 집 안에 갇혔다.
난방은 장작난로였는데, 장작은 거의 떨어졌다.
기름 보일러는 기름이 다 떨어져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수도관은 얼어붙었고, 화장실조차 쓰기 어려웠다.
식사는 비상용으로 쌓아둔 라면과 햇반으로 겨우 해결했다.
전기가 나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느껴진 감정은
‘분노’도 ‘슬픔’도 아닌 무력감이었다.
무엇 하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느낌.
그때 처음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질 뻔했다.
고립된 집 안에서 아내는 울었고,
나는 장작을 찾아 뒷산에 올라가면서
정말로 이삿짐을 싸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 그래도 떠나지 않은 이유 ]
① 내가 바뀌었다는 자각
그런 위기를 겪고도 결국 나는 이곳에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이 모든 경험이 나를 바꿔놓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불편을 견디지 못했고,
조금이라도 효율적이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생활은
그 불편을 견디는 법을 가르쳐줬다.
물건이 고장 나면 수리기사를 기다리는 대신
내가 손수 고쳐야 했고,
텃밭이 망가지면 그 해 농사는 끝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이 모든 건 무기력해지는 대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힘을 길러줬다.
나는 더 단단해졌다.
그게 내가 떠나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② 관계가 깊어졌다는 사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느 순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했던 인사도,
몇 번의 김장, 마을 청소, 장례식 참석 등을 거치며
서서히 바뀌어갔다.
어느 날, 겨울 장작이 떨어졌을 때
옆집 어르신이 말없이
마당에 장작 한 무더기를 내려놓고 가셨다.
“힘들면 말해요.”
그 말 한마디가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이 관계는 도시에서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이 공동체에 참여하자,
그들도 나를 공동체의 일부로 받아주었다.
③ 이 삶이 진짜 나다운 삶이라는 확신
시골살이 2년 차, 이제 나는 확신한다.
이곳이 불편하고 때때로 고되지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나다운 삶이라는 것을.
도시는 편하다.
하지만 너무 바쁘고 빠르고
사람이 자기를 잃기 쉬운 공간이다.
시골은 느리고 불편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게 만들고,
나의 손으로 하루를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삶’을 가능하게 한다.
불편함을 감내하고 나면
그 안에 깊은 평온이 있었다.
시골은 ‘살아내는 장소’다
시골은 낭만이 아니다.
시골은 ‘살아내는 장소’다.
정말로 삶과 마주하고,
자신의 부족함과 외로움, 무력함을 매일 실감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 단단해지는 공간이다.
나는 지금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살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히 갖고 있다.
혹시 지금 시골살이를 고민하거나
이미 하고 있지만 후회하고 있다면
이 글이 작은 위로이자 방향이 되었으면 한다.
떠나고 싶은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견디고 나면
시골은 당신을 진짜 사람으로 바꾸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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