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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현실 39편 : 시골에서 ‘언젠가는 떠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처음 시골에 이사 왔을 때, 당초에는 이곳에서 평생을 살 생각이었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생각’을 넘어서 이미 마음을 그렇게 정하고 있었다.도시의 번잡함에 지쳐 있었고, 인간관계의 소음 속에서 탈출하고 싶었고,내가 나답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온 것이라고 믿었다.그래서 집을 구하고, 텃밭을 만들고, 장작을 쌓고, 계절을 몸으로 맞이하면서나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살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문득문득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그건 지금 당장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아니라,이곳이 영원한 안식처가 아닐 수도 있다는 현실적 인식이었다.그 마음은 나를 흔들기도 했고, 동시에 지금 여기에 머무는 내 자세를 더 겸손하게 만들기도 했다.시골살이는 종착점이 아닐 수도 있다.그걸 받아들이.. 2025. 7. 16.
시골살이 현실 38편 : 시골살이와 ‘포기하지 않는 법’ - 버티는 힘에 대하여 시골에 내려와 처음 몇 달은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다. 풍경도 낯설고, 사람도 낯설고, 아침의 공기마저 생경했다.그래서 모든 순간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떤 의미로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함이 시작되었고, 그 익숙함 속에서 반복이 생기기 시작했다.그 반복은 일상의 리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권태나 피로, 그리고 고립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내가 견뎌야 하는 건 단순히 외로움이나 불편함이 아니었다.생각보다 버텨야 할 건 무너지는 마음, 대책 없는 날씨, 끝없는 육체노동, 이해받지 못한 채 쌓이는 감정,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묻는 ‘계속해야 할까’라는 질문들이었다.그럴 때마다 나는 선택이 아니라 버티는 걸 택했다.버티는 건 누가 가르쳐.. 2025. 7. 15.
시골살이 현실 37편 : 시골에서 ‘아무도 모르게 울던 날’에 대하여 울었다. 그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울고 나서야 내가 울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 일도 없었고, 특별히 힘든 사건도 없었다.그저 평범한 하루였고,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햇볕이 들면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장을 넘겼다.그러다 오후쯤, 바람이 조금 불고 잔디 위로 그림자가 들 때쯤 나는 갑자기 이유 없이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지만 왜 흘렀는지 알 수 없었고,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는지도 설명할 수 없었다.말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 상태로 나는 마당 벤치에 앉아 있었다.그제야 알았다. 나는 이미 꽤 오래 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아무도 보지 않는 이 공간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마음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던 걸.그 울음은 누군가에게 .. 2025. 7. 14.
시골살이 현실 36편 : 시골살이와 날씨 - 비, 바람, 눈이 삶을 좌우할 때 도시에서 날씨라는 것은 주로 옷차림을 결정하거나 외출 계획을 조정하는 정도의 요소였다. 비가 오면 우산을 챙기면 되고, 눈이 오면 조금 더 일찍 나서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됐고, 바람이 불어도 창문만 닫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골로 내려오고 나서 날씨는 내 삶 전체를 바꿔버리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이 침수되고, 바람이 센 날이면 기울어 있던 비닐하우스가 날아가며, 눈이 오면 단순히 쌓이는 게 아니라 고립을 의미했다. 처음엔 그 변화에 당황했고, 나중엔 그것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 모든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시골에서의 날씨는 단지 하늘의 일이 아니었다. 땅의 일이었고, 나의 일상이고, 하루의 시작을 바꾸고 끝맺음을 흔드는 결정적인.. 2025. 7. 13.
시골살이 현실 35편 : 마당이 있다는 건 무엇일까: 땅과 나 사이의 거리 귀촌을 결심하고 집을 알아볼 때, ‘마당이 있는 집’을 가장 큰 조건 중 하나로 삼았다. 도시에서의 삶은 언제나 콘크리트 위에 있었고, 땅은 내가 밟는 발 아래 있지만 내 것이 아니었으며, 집은 벽과 창틀 안에 갇힌 공간일 뿐이었다. 그래서 마당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자유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마당, 거기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아 느긋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 강아지가 뛰어다니고 고추가 익어가는 풍경, 그런 장면들을 꿈꾸며 나는 마당이 있는 집을 선택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처음 마주한 마당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잡초는 발목 높이까지 자라 있었고, 땅은 고르지 않았으며, 어딘가엔 개미집이 터져 있었고, 오래된 비닐하우스가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마당은 한눈에 보기에도 관리가.. 2025. 7. 12.
시골살이 현실 34편 : 시골에서 마음을 다치는 순간들: 기대와 오해, 그리고 침묵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기대한 것 중 하나는 도시와도 다른 인간적인 관계였다. 도시에서는 익명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익명이 때로는 편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외로움을 깊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골로 내려올 때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고 서로를 기억하는 삶을 상상했다. 처음에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이웃 어르신들이 이름을 물어봤고, 지나가다 만나면 손을 흔들어 주었고, 텃밭에서 일하다가 물을 나눠 마시며 짧은 대화를 나눴을 때 나는 내가 드디어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말 한마디가 오해로 번지고, 사소한 행동 하나가 해석을 낳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말수를.. 2025.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