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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현실 33편 : 시골살이와 자동차: 이동의 자유, 그리고 고립 시골로 내려오고 처음 몇 주간은 대중교통으로도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시내버스가 있긴 했고, 읍내로 나가는 차편도 하루 몇 번씩은 있었으며, 걸어서 갈 수 있는 마트가 한 곳쯤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달랐다. 버스는 하루 몇 번밖에 없었고, 배차 간격이 두세 시간이 넘는 건 기본이었으며, 정류장까지 가는 길도 멀고 불편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이 동네에선 차 없으면 사람 취급도 못 받아”라는 말을 했을 땐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마트에 가려면 왕복 1시간, 병원에 가려면 예약 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발해야 했고, 갑작스러운 약국 방문이나 식료품 보충도 모두 차량 없이는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했다. 그제야 나는 이곳에서 자동차가 ‘옵션’이 .. 2025. 7. 10.
시골살이 현실 32편 : 시골의 ‘정’이 피로하게 느껴질 때 시골로 내려왔을 때 내가 가장 놀랐던 건 사람들의 따뜻함과 다정함이었다. 도시에서는 이웃과 일 년을 살아도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이곳에선 며칠을 살아도 이름을 묻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첫 날부터 이웃이 반찬을 가져다주었고 마을회관에서 새로 왔다며 나를 소개했고 텃밭에 심을 고추 모종이 필요하다고 하니 어느 집 아주머니는 묻지도 않고 남은 걸 가져다주셨다. 그 모든 행동이 너무나 다정하고 정겹게 느껴졌고 나는 이곳에서 드디어 사람 냄새 나는 삶을 살게 되었구나 하고 감탄했다. 귀촌 전에는 ‘시골 사람들은 폐쇄적이다’라는 말이 많아서 조금 걱정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그건 편견이었고 오히려 도시보다 따뜻한 마음이 곳곳에 스며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 2025. 7. 9.
시골살이 현실 31편 : 시골에서 ‘내 집 마련’이란 무엇인가 도시에서 집을 가진다는 건 곧 자산의 시작이자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일이다. 전세가 아닌 자가로 산다는 것은 월세 스트레스에서 벗어난다는 안도감뿐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신분 상승의 출발선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일단 도시에서처럼 로드맵이 명확하지 않다. 정해진 분양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깔끔하게 정돈된 정보가 모여 있는 플랫폼도 드물다. 대부분 중고차처럼 지역 부동산이나 마을 사람들 간 입소문에 의존해야 하며, 그 집의 상태도, 땅의 성격도, 구조도 매우 제각각이다. 나는 도시에서 20년을 살아오면서 ‘부동산’이란 단어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골에서 집을 사려 하자 완전히 다른 언어와 질서가 펼쳐졌고, 나는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다.. 2025. 7. 8.
시골살이 현실 30편 : 다시 시작하더라도, 나는 시골을 선택할까? 처음 시골로 내려올 때는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다. 도시의 피로가 가득 쌓여 있었고,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는 강박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디든 좋았고, 서울만 아니라면 그곳이 산이든 바다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작정 내려온 시골,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선했고 익숙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내 삶이 마치 새로운 영화처럼 펼쳐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그건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는 현실이었다. 고요했지만 외로웠고, 한가했지만 할 일이 넘쳤으며, 자연은 아름다웠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많은 것들을 배워야 했다. 도시에서 쓰던 언어와 몸짓은 여기서 통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배우고 또 익히며 조금씩 달라진 사람이 .. 2025. 7. 7.
시골살이 현실 29편 : 시골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귀촌한 지 2년이 지났다. 시골살이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계절마다 반복되는 일상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아침에 허리를 펴는 게 예전보다 느리고 무거운 걸 들었을 때 팔에 오는 통증이 하루 이상 간다. 마을 어르신 중 몇 분은 병원에 다녀오셨고, 한 분은 아예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내가 여기에 오래 살아도 괜찮을까, 나이 들어서도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그저 시골의 고요함이 좋았고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지금의 삶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몸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하고, 마을 이웃 중 몇 분이 건강 문제로 고립되는 걸 보면서 이곳이 과연 나의 노년을 보내기에 안전한 장소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시골살이와 노년의.. 2025. 7. 7.
시골살이 현실 28편 : 시골살이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시골에 온 지 2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큰 고민없이 왔다. 오직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이곳을 선택했고, 당장의 피로를 벗어나기 위한 충동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곳에서의 삶을 조금씩 사랑하게 되었고, 동시에 이곳이 나의 종착지일 수 있을까에 대해 자주 고민하게 되었다. 시골살이는 시작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계속 살아가는 건 훨씬 더 큰 결단이 필요하다. 처음엔 자연이 좋았고, 한적한 삶이 마음에 들었다. 시계에 쫓기지 않는 시간, 농한기와 농번기를 오가며 느끼는 계절의 리듬, 밤마다 쏟아지는 별빛은 도시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질문이 마음 한구석에 스며들었다. 나는 정말 이곳에서 늙어갈 수 있을까. 나의 마지막은 이 마을에서 .. 2025. 7. 7.